2009년, 새 앨범 < 지은 >이 발표되었다. 이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 해피 로봇 > 레이블에 소속되면서 홍보와 판매 일을 떠나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때 생긴 시간적, 금전적 여유로 더 큰 편성의 '밴드' 음악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 이후로 언론들의 인디 씬에 대한 관심은 치솟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2집 앨범은 전작을 상회하는 쾌속 순항 중에 있다. 초판도 벌써 다 나갔고, 일각에선 '여자 장기하'란 말도 꺼냈다. 2009년 인디 씬 최고의 화제인 그녀, 오지은을 만났다.
최근에 반응이 아주 좋던데요. 앨범 판매도 괜찮죠?
1집 때 직접 할 때는 몇 장 나가고 그걸 알았는데, 지금은 잘 몰라요.
역시 그 부분이 궁금한데, 1집 < 지은 >은 '선주문, 후제작' 방식으로 만든 앨범이었어요. 아주 모험적인 시도였는데.
사실은 약간의 선주문을 받을 수 있던 걸로 얘기가 끝났어야 하는 건데, 어쩌다가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거잖아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어떻게 그런 용기가 있었어요?” 그런 말도 들리던데,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니고 사람이 뒷 일을 생각하지 않는 거죠. 웃음.
보통은 데모를 돌리고 레이블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게 정상인데. 굳이 혼자서 해야겠단 마음을 먹게 된 이유가 뭔가요.
저는 밴드를 일찍 시작한 편이라 중학교 때부터 뮤직 비즈니스를 어깨너머로 지켜봤어요. 근데 역시 싸인은 쉽게 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컸어요. 10년 넘게 지켜보니까, 내가 이상태에서 들어가면 충고를 받을 구석이 많고, 그래서 더 정돈된 앨범이 나올 걸 알았어요. 그러면 극한까진 못 볼 것 같았어요. '그냥 이렇게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해볼까?' 싶었죠. 예전에도 했던 얘긴데, 나의 내용물을 데모 취급하기 싫었어요. 왠지 그게 싫던데.
1인 레이블을 했으니 힘든 점도 많았겠어요.
뮤지션이 할 일은 보통 마스터링까지인데, 인쇄소부터 시작해서 담당하는 판매처까지 정말 천통을 전화할 게 있으면 정말 음악을 할 힘이 빠져요. 또 혼자 판매하니까 '아마추어'라는 등식이 바로 세워지고, 직접 제작해서 판매하니까 '센' 여자라는 이미지도 생기고. 심지어는 '음악이 별로일 거다?'라는 생각도 있었나 봐요. 1년 정도 뒤에 결국 알게 되었는데, “지은 씨 사실 좀 별로일 줄 알았어요”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오죽하면 레이블도 없이 있겠냐?'란 편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어요.
결국은 어떤 식으로라도 검증이 있어야 관심을 가져주는데, 어떤 선배가 칭찬을 했다든가 하는 것도 없었고, 앨범 재킷도 굉장히 불친절했고, 아무래도 호감을 가질 요소들이 없었던 거에요. 그래서 저한테 시디를 구입한 분들이 고마운 것은, 순전히 음악만 듣고 샀다는 거에요.
그냥 음악만 듣고 사람들이 반응을 준 것이었기 때문에, 더 자신감이 생겼겠어요.
저 스스로에 대한 도박이었거든요. '이겼다'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음악 내용물만으로 제가 이룬 거잖아요. 초반에는 직접 배송을 했는데, 주소지를 보면 이쪽 음악 들으시는 분들이 아니에요. 아무래도 이쪽 들으시는 분들은 지식이 많을수록 편견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저는 갑툭튀니까. 웃음. 메일도 딱 받을 주소만 보내는 게 아니라 “지은 씨 이거 왠지 끌렸어요”, “너무 잘 들었어요” 라는 말들을 붙여주시더라고요. 농산물 직거래하는 농민 같았어요. 웃음. “여기서 토마토 사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그런 말 들으면 너무 좋잖아요.
결국은 레이블에 소속이 되었는데, 어떤 점이 더 수월한가요?
천통의 전화를 생략할 수 있다는 거요. 웃음.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거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요. 일이 있는데, 거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요. 재킷 사진 찍을 때 쿠키라도 사서 온다든지, “이런 일 있는데 어쩔까요?”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든지. 아무래도 친구들은 생업이 있다 보니까 모든 일에 동참할 수 없거든요. 그래도 여기저기 물어도 보고 싶은데 그걸 직업적으로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좋았어요. 철저히 혼자라는 것이 사무쳤는데 지금은 잘 하면 잘 한다고 칭찬도 해주고, 아니면 아니었다 얘기도 해주고, 그래서 좋아요.
결국, 외롭지 않아서 좋은 거네요.
네!! 너무 외로웠어요. 웃음. 클럽 공연을 하나 해도 전화 통화를 몇 개를 해야 하는데, 세상에 클럽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온갖 조정도 다 해야 하고요.
돌아보면 어땠던 거 같아요? 혼자서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근데 저는 결국 유난을 떨었던 거에요. 어떻게 보면 결벽증 비슷한 것일 수도 있어요. '첫 번째 앨범엔 아무도 관여하지 마라!' 그래서 혼자 한 거였어요. '난 혼자서 해낸 뮤지션!! 앞으로도 이렇게 혼자 해야지!' 그런 거 없었고요, 실질적인 이유에서였죠. 레이블에 들어갔는데 레이블도 음악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면 물론 편하죠. 그런데 혼자 있을 때 편한 건 1만원에 팔았을 때 그 돈이 전부 저한테 돌아온다는 거였어요. 딱 농작물 파는 그 기분이었어요. 웃음. 내가 음악을 만들면 누가 듣고 있구나 하는 걸 아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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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번 신보는 '밴드' 음악을 시도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제가 맨 처음에 밴드를 할 때 메가데스(Megadeth)의 'Symphony of destruction'의 세컨드 기타를 쳤어요. 웃음. 노래를 안 하고 전 항상 세컨이었어요. 저는 원래 원류가 거기였는데 못 하니까 좀 갑갑했어요. 1집 노래 중에 '화' 같은 곡도 더 세게 만들 수 있었는데, 정말 록킹하지 않은 걸로 록킹한 걸 해보자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3집 이후에나 할 시도를 1집에서 한 거죠. 물론 그 때가 악기가 3개 이상 들어간 건 못 듣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근데 2집은 정말 편했어요. 고향에 온 기분.
그럼 라이브 할 때도 좀 답답했겠어요.
일어서서 뱃심으로 노래를 해야 하는데, 앉아서 조근조근하게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관객도 20, 30명 있고, 그런 이미지가 생기니까 또 갑갑하고.. 밴드 사운드를 녹음하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드는데, 그래서 회사가 있는 게 또 좋더라고요.
밴드로 편곡한 뒤엔 관객들 반응은 많이 달라졌겠어요.
이미 앨범을 내기 1년 저부터 라이브에서는 밴드 셋으로 돌고 있었어요. 작년 여름 정도부터요.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거죠.
본인의 밴드가 있는 게 아니라, 전부 객원을 쓰고 있는데, 공연은 원활해요?
근데 이 사람들하고 한지가 벌써 1년이에요. 그래서 말이 객원이지 팀 느낌이 좀 있어요. 중엽(장기하와 얼굴들의 정중엽)이나 다른 세션들도 그렇게 생각해요. 음악을 만들 때도 저는 방향만 정하고 잘 관여를 안 해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편이라. 리듬 정도? “여기서 잠깐 터트리고 여기서 멈춰!” 이런 식.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내주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1년을 같이 하니까 만들면서 원시적인 말들도 잘 통해요. 웃음. “누나 이건요?” 하면 “어 그거!” 한다든가, “계속 달려!”, “우다다다!”, “거기서 브레이크!”
그럼 이 앨범은 '오지은'이 아니라, '오지은 밴드'의 음악이겠네요.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 '트랙'들이 있는 거죠. 왜 밴드를 꾸리지 않느냐면, 그렇지 않은 곡들이 있거든요. 우크레레에 플루트가 들어간다든가, '잊었지 뭐야' 같은 일렉트로닉한 곡도 있고요. 결국은 그래서 솔로인 거죠. 취사선택을 하되, 70% 정도의 노래들은 밴드와 진행을 한 거죠.
'진공의 밤' 가사가 많이 언급되곤 하는데, 아무래도 가사가 좀 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떻게 나온 가사에요?
진공의 밤이 계속 되던 주간이 있었어요. 냉장고에 가서 물을 마시려다가도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 같은. '나 대신에 벌레만 울어주는 밤'이란 가사도, 밖에서 벌레가 울더라고요. 나는 이미 격한 슬픔이면서 울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나 대신 벌레만 울어주는 밤... 당시에 저를 봤더니 너무 슬픔이 커서 과장되게 살고 있더라고요. 괜히 더 시끄럽게 친구들이랑 떠들고. 그걸 솔직하게 썼어요.
그런 '센' 이미지의 곡들도 있지만, 보통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밝은 곡들도 꽤 있던데.
'절망'? 거창한 표현으로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건 기간을 빠져 나와서 쓴 곡들이에요. '인생론'이나 '웨딩송'은 빠져 나오고서 만든 곡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빼기가 싫었어요.
'절망'이라고 했던 그 기간이 궁금한데, 구체적으로 언제였죠?
가장 큰 절망의 기간은 2007년 11월 정도부터 1, 2월까지? 곡이 줄줄 나오더라고요. 이 앨범의 셋 리스트랑 편곡은 작년 2월에 이미 나왔어요.
절망의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실연이죠. 단순한 실연이었다기보다는, 20대의 마지막 잘난 척에 한 방을 맞은 거 같아요. 20대 후반 정도 되면 '아.. 이젠 난 정말 알 거 같아..'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위험할 때에요. 연예의 ABC 라든지, 세상에 대한 자세라든지, 이런 걸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한텐 약간... 과장되게 얘기를 한다면 '뒤집히는' 기분이었어요. 1집 역시 실연 노래가 많지만 그 때가 '헤어져서 아파..' 느낌이었다면, 2집은 '아.. 이렇구나.. 원래 이래..' 그런 톤이었던 것 같아요. 똑같은 사람인데도 조금은 톤이 달라진 면이 있어요.
'인생론' 같은 헐렁한 로큰롤을 쓸 수 있었던 것도 큰 절망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인생은 어차피 꼬이기 마련이고, 그러니까 도움이나 되면 좋겠고, 너랑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좋겠고, 자학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절약하고. 어차피 인생은 꼬이기 마련인데, 옛날엔 '왜 꼬였지?' 그랬지만 이젠 실연을 겪었어도 이게 그 사람의 잘못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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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편곡과 중성적인 목소리로 만들어진 앨범이지만, 문득 드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천상 '여자의 이야기' 라는 거였습니다.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도 결국은 사랑을 하면서 계속 확신과 기다림을 요구하는 여자 분들의 특성 아닐까요. 웃음.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의 경우는 아마 압도적으로 여자들이 좋아할 테고요. 남자 분한테는 “기분이 나쁘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남자의 감정을 위에서 까고 들어가는 거 아니냐.' 웃음. 사실은 슬프고 절박한 노랜데. 그래서 남녀가 싸우는 구나 싶어요.
'진공의 밤', '익숙한 새벽 3시' 등, 밤에 대한 노래들이 꽤 있는데, 들으면서 '새벽에 혼자 집에 있을 땐 누구나 괴롭고 외롭고 그런가보다...'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밤엔 주로 뭘 해요?
격하게 센티할 때는 곡을 쓰고요, 적당히 센티할 때는 아무 관심도 없는 내용을 막 웹서핑을 해요. '신인 여배우 비키니'라고 있으면 보고서 '아.. 비키니네...' 그런 거. 세상이랑 연결되어 있고 싶어서 그런 건가? 메신저 켜놓고 밤에 그러고 있는 사람들 많잖아요. 또 뭐가 있을까.... 시즌에 따라 다른데, 요즘은 그렇고요. 게임을 격렬하게 하는 시즌도 있고, 책을 읽는 시즌도 있고요.
오지은 음악의 키워드라면, 구어체에 가까운 가사, 보컬도 노래하기보다는 말하기의 느낌이 강한데, 결국 '솔직함'이 키워드겠죠?
오지은이란 뮤지션이 가져야 되는 미덕은 현란한 코드 진행도 아니고, 굉장히 복잡한 반전이 있는 구성도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너무 솔직하게 써서 와 닿는 수필 같은 것, 그런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정규앨범에서는 특히요. 노래하는 것도 그렇게 하려고 했고요.
어릴 때부터 저는 지켜보는 기간이 길었는데, '아 정말 아는 만큼만 말해야겠다' 했어요. 커 보이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안네의 일기도 너무나 훌륭한 문장가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애가 사심 없이 솔직히 표현했기 때문에 더 와 닿는 거잖아요. 멋있는 척하는 유혹은 굉장히 빠지기 쉬운데, 저는 그걸 굉장히 경계해요. 99명은 속아도 한 명이 눈치 채는 것보다는, 아예 눈치 채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이만큼입니다!'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형식적인 질문이지만, 영향 받은 뮤지션들이 궁금합니다.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이게 되게 큰 고찰을 요구하는 질문이에요. 적당히 대답했다가 '이렇게 얘기할 걸..' 하는 생각도 들고, 평론의 영역에 영향 받은 듯한 뮤지션 나열하는 것도 별로고요. 근데 어떤 리뷰를 읽어보니까 제가 이름만 아는 뮤지션, 앨범 딱 한 장밖에 없는 뮤지션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단언'을 하시더라고요. 좀 이상했어요.
그래도 꼽는다면, 먼저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 좋아해요. (좌중 놀라자) 정말이에요. 웃음. 그리고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만든 알앤비는 대체적으로 다 좋아해요. < Waiting To Exhale > OST도 샀어요. 저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멜로딕한 노래가 다 좋아요. 다른 싱어송라이터들은 악기를 먼저 하다가 노래를 하게 된 경우가 많은데, 전 보컬을 먼저 했기 때문에 멜로디가 유려하면 다 좋아해요. 타이프 오 네거티브(Type O Negative)도 좋아해요. 웃음. 중학교 2학년부터 밴드를 했으니까, 사람들끼리 테이프에 자기 컴필레이션 만들어서 주는 게 유행했잖아요. 모던 록 팬들은 틴 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 위저(Weezer) 이런 것 주고, 데스 좋아하는 오빠들은 카르카스(Carcass), 카니발 콥스(Carnnibal Corpse), 그런 거 모아서 줬거든요.
피제이 하비(PJ Harvey)의 경우엔 이런 톤으로 이런 내용을 얘기해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그런 걸 알았어요. 그러면서 속삭이기도 하고... 보컬이 작았다가 커졌다가 하기도 하는 것은 거기서 영향을 받은 거죠. 가장 마르고 닳도록 영향을 많이 준건, 특히 말하듯이 노래하는 거나 솔직한 가사 측면에서는 쥬얼(Jewel) 1집의 영향을 받았어요. 'Morning song' 같은 노래들.
어제는 이런 대답을 했어요. 저와 음악을 하는 세션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저는 레퍼런스가 없어요. 보통은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 없이 막 하거든요.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 저는 좋아요. 물론 비슷하게 들릴 수는 있겠죠. 그런데 누군가를 따라간다는 말은 좀.... 게다가 내 애기를 하는 데 남을 따라갈 수는 없어요. 새벽 3시에 이랬다는 걸 말하는데 '누구 스타일로 해볼까..' 뒤질 순 없잖아요. 가장 잘 붙는 멜로디, 가장 잘 붙는 편곡이 뭘까를 고민하면서 나오는 거라서요.
3집이 대해선 어떤 계획을 갖고 있어요?
2집은 제가 저한테 악마의 일정을 강요한 앨범이에요. 믹싱을 3일에 끝냈어요. 정말 3일이라니까요. 죽는 줄 알았어요. 제가 제 상관이었으면 사표를 냈을 거에요. 하지만 내가 나한테 시킨 거였으니까 하소연할 수도 없고. 오히려 회사에서는 “지은 씨 좀 천천히 내시지..” 하는 데요. 웃음. 그래서 너무 지긋지긋했는데, 얼마 전부터 버스나 지하철에 있으면 자꾸 생각을 하게 되는 거에요. 전 랜덤으로 주로 듣는데, 뭔가를 들으면 '아.. 이런 식으로 풀었구나..', '이런 식도 괜찮겠다..' 계속 이러는 거에요.
그런데 아마도 정규가 나오기 전에 '외전'을 굉장히 많이 할 것 같아요. 정규가 잘 나오기 위해서요. 뭔가 차올랐을 때 쓰고 싶지 억지로 하고 싶진 않거든요. 그래서 완전 쌩뚱맞은 장르로 외전을 좀 하다가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요. 미니 앨범이나 싱글이 좀 나올 것 같아요.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홍대 얼짱' 코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신수진 양이라든지(요조), 김민영 양(타루), 개인적으로도 아는 분들인데, 그 분들이 '아이콘'화 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누군가가 그 사람들의 음악에서 안식을 찾는 거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반대로 '얼짱 코드의 음악과 다르다!'라는 식으로 제 음악을 얘기하는 건... 왜 그러셨어요. 웃음. 약간 그렇고요. 전혀 대립각을 세우고 싶진 않아요. 지나치게 그런 게 확대 평가가 되면 좀 그렇지만, 근데 그건 파스텔이 잘 한 거지. 웃음.
인터뷰, 정리 : 이대화
사진 : 채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