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는 이미지만으로도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다. 인순이가 이미지 덕을 봤다고 얘기하면 대부분은 코웃음 칠 것이다. 약간 달랐던 태생부터 시작해 우리의 언론은 그녀를 괴롭히는 쪽에 더 집중해왔다. 1978년 희자매로 데뷔해 히트곡 '밤이면 밤마다'로 열린 음악회 같은 전체 관람가 쇼에 어울리는 가수, 조피디의 '친구여'는 잠깐의 화제를 낳았을 뿐이었다. 세대 구분 없이 모든 이가 인정하는 디바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거위의 꿈'부터다. 인순이의 가수인생을 통틀어보면 실로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사람들은 명쾌한 단어로 그녀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인순이는 하나의 당당한 이미지가 되었다.
거위의 꿈으로 다시 맞이한 전환기는 아찔한 고공행진 중이다. 헤아리기도 힘든 바이오그래피는 17이라는 숫자를 안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 인순이가 들어 있을까. 노래를 잘했다, 혹은 못했다 라는 표현 자체가 여기에선 필요 없을 듯하다. 마스터로 불리는 이에겐 어떤 미사여구도 거추장스러울 뿐이니까.
프로듀서는 이현승이다. 이승철과 김태우의 프로듀스를 맡은 바 있고 최근엔 다비치의 '8282'로 이름값을 올렸다. 이쯤이면 그녀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앨범의 문을 여는 'Fantasia'는 파워풀한 가창력을 끌어올려 '나는 인순이다'라고 외치는 곡. 화려한 편성에 비해 조여 주는 맛은 덜하다. 이어지는 타이틀 'Cry'는 '내가 울어 버렸다'로 맺어지는, 자전적인 가사가 먼저 와 닿는다. 똑같은 사랑 노래도 인순이가 부르면 한 단계 승화된다. 강약을 자유로이 조절하는 힘 덕분이다.
늙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엔터테이너에겐 그림자와도 같다. 인순이는 파격적이라 할 만큼의 다양한 음악적 변신으로 나이테를 없애려 했다. 앙리가 피쳐링한 '기회'와 마이티 마우스가 랩을 맡은 '일어나'에서 그런 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시장 속에서 이미 거대해진 오토튠의 사용은 그렇다 쳐도 이렇게까지 '젊은 감각'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감각적인 편곡으로 다시 태어난 김범수와의 듀엣 '향수'나 소탈한 생목소리가 깃든 '나무'가 반갑다.
'이 만큼 음악을 했으니 다음엔 그것을 할 차례다'라는 건 없다. 허나 인순이라는 이름을 좀 더 고귀하게 여길 필요는 있다고 본다. 히트곡이 늘어가는 만큼 깊이에의 고뇌도 있어야한다.
1. Fantasia
2. Cry

3. 향수

4. 아버지
5. 기회
6. 일어나
7. 뿌리 (Prologue)
8. 나무

9. 딸에게
10. 사랑가

11. Merry Merry
12. Fantasia (In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