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의 영화의 거장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영화에서 영상 못지않게 음악중심을 실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라스트 왈츠>와 2005년 포크의 영웅 밥 딜런의 공연을 추적한 <노 디렉션 홈>이 실증한다. 음악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택시 드라이버>와 <레이징 불>, <비열한 거리>가 말해주듯 스코어와 삽입곡이 범상치 않다. 이 점에서 그가 롤링 스톤스 공연을 필름으로 옮기고 싶은 충동은 어쩌면 당연하다.
노(老)감독 입장에서 가장 끌리는 코드는 자신처럼 환갑을 넘긴 올드맨이 뿜어내는 열정일지 모른다. 1969년 공연을 본 뒤 롤링 스톤스의 광팬이 됐다는 그가 지금의 롤링 스톤스에게서 발견한 것은 바로 이 열정이다. 거기에다 본인이 인터뷰에 밝힌 대로 역사를 입혀 새로운 텍스트의 음악영화를 주조해냈다. 대체로 음악영화로 일컫는 부류는 대부분 아티스트의 일대기 식의 다큐 아니면 뮤지컬 영화가 떠오른다. 그는 시선을 전혀 달리 했다. 롤링 스톤스의 콘서트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접근법을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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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사람은 설령 음악 팬이 아니더라도 분명 한 가지는 얻는다. 1943년생으로 우리 나이 예순 여섯인 보컬 믹 재거가 군살 하나 없는 청춘의 몸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정말이지 목 아래부터는 영락없는 20대다!) 동갑인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가 그려내는 무대 동선과 숨길 수 없는 반항기 역시 혀를 차게 한다.
만약 우울하거나 핏기를 잃었거나 무기력에 빠져 있는 사람은 이 영화를 봐야 한다. 롤링 스톤스의 가열 찬 에너지에 중독되어 두 주목 불끈 쥐어야 한다. 행여 나이 들어가고 있음에 두려움을 느끼는 기성세대라면 재활의 산소가 공급되고 한 줄기 빛이 자신에게 내려쬐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이 대목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젊은 시절 믹 재거가 “2년이나 밴드 활동을 하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요? 앞으로 1년 정도는 더 할 수 있겠죠.”라고 말하는 자료 필름 뒤에 40년이 흐른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격렬한 제스처로 포효하는 모습을 이어지게 한 대목, 여기가 결정적이다.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공연과 영화 슈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연시간이 임박했음에도 첫 곡이 나오지 않는 상황을 보고 롤링 스톤스가 '큰 밴드'임을 안다. (물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그룹을 소개하는 것으로 알 수 있지만) 단지 작위성 배제의 틀로만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슈퍼스타만이 마틴 스콜세지와 같은 거장에게 첫 곡 정보도 주지 않는 '거만'을 행사할 수 있으니까.
스콜세지 감독은 미리 각본이 짜여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각 곡의 전개와 성격을 파악해 기타 솔로와 드럼 솔로가 나오는 순간, 정확히 카메라를 위치시켜 흔히 방송에서 목격되는 카메라와 음악이 따로 노는 엉성함을 완벽히 유폐시킨다. 이를 통해 탁월한 공연 음향을 포착하고 있다. 괜찮은 음향장비를 갖춘 영화관이라면 관객들은 마치 스페셜 R석에서 공연을 보는 생생함을 만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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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롤링 스톤스 공연을 보고 수십 년 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을 해소한 기억이 난다. 영미 사람들은 왜 'Brown sugar'라는 곡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 곡은 1971년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당시 롤링 스톤스 앨범을 구입해서 들은 국내 팬들 가운데 'Brown sugar'를 애청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라디오 전파도 거의 타지를 못했다.
콘서트를 보면서 비로소 이 곡은 음반음악이 아니라 '공연음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샤인 어 라이트>에서도 나타나지만 'Brown sugar'를 노래할 때 객석은 믹 재거의 동작을 리듬에 맞춰 정확히 따라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한다. 음반으로 멜로디를 추종하는 국내 팬들과 달리 공연관람이 일상화된 서구인한테는 이 곡은 당연히 넘버원 송 감이었던 것이다.
공연장에서는 전혀 음반 수록곡이 다르게 들린다는 점은 <샤인 어 라이트>에서 롤링 스톤스가 부르는 노래를 몰라도 전혀 감동에 지장이 없음을 말해준다. 영화관이 아닌 공연장에 와서 그들의 음악으로 흡혈(吸血)한다는 점만을 생각하면 된다. 롤링 스톤스의 앨범 궤적을 성실히 챙긴 마니아가 아니라면 솔직히 레퍼토리는 생소한 것들이 많다.
일례로 1978년의 명반 < Some Girls >에서 유명한 'Miss you'나 'Beast of burden'을 한 게 아니라 훨씬 덜 알려진 곡 'Some girls'와 'Shattered'를 골랐다. 웬만한 팝 팬도 소장하고 있지 않은, 그러나 서구 평단은 그들 최고의 명반으로 손꼽는 < Exile On Main St. >에서 영화의 제목이 된 'Shine a light'는 물론, 'Tumbling dice', 'All down the line', 'Loving cup'이 연이어 나오는데, 지루함이 없지는 않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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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버디 가이와의 합동 무대는 '백인으로서 흑인 블루스'를 하는 롤링 스톤스와 '흑인으로서 흑인 블루스'를 연주하는 버디 가이와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의 시청각을 자극한다. 그는 롤링 스톤스 멤버들과 '일렉트릭 블루스의 아버지'라는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의 'Champagne & reefer'를 연주하고 있는데, 이것도 <샤인 어 라이트>와 롤링 스톤스를 이해하는 단서로 기능한다. 그들은 앵글로 색슨 백인이지만 흑인음악인 블루스에 천착했다. 영화에서 흑인 그룹 템테이션스(Temptations)의 1971년 빅히트 넘버인 'Just my imagination'을 마치 자기들 것인 양 해석해내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끈적끈적한 블루스에 수절했지만 동시에 거기서 록으로의 확대 발전을 꾀했다. 처음에 부른 'Jumpin' Jack Flash'이나 'Paint it black', 록의 '운명 교향곡'이라는 평을 받는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블루스에 기반을 둔 곡이지만 명백한 록이다. 이것은 록이 블루스에 기원을 댄 음악임을 알려준다. 오늘날 록의 뿌리가 흑인음악 블루스라는 사실을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교육시켜준 존재가 바로 롤링 스톤스인 것이다. 키스 리처드는 “우리는 머디 워터스, 지미 리드, 존 리 후커와 같은 블루스맨의 후계자로 우리가 그들과 같은 블루스를 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레코드가 팔린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우리가 그룹을 결성한 애초의 목적이 바로 이 것이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그들이 팝과 록의 역사에서 비틀스만큼(어떤 점에서 그 이상)의 절대 위상을 점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큼하고 날씬한 비틀스 음악과 견주었을 때 거무튀튀하고 울퉁불퉁한 그들의 음악이 대중적 인기에선 밀렸지만, 그래서 늘 2등 신세였지만 대신 역사적 위치로 충분한 보상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타이틀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위대한 로큰롤 밴드(The greatest rock'n' roll band ever)'다.
또 하나 관객들의 합창이 돋보이는 곡 'Sympathy for the devil'을 빼놓을 수 없다. 서구에 청춘혁명이 불길처럼 번지던 1968년에 발표된 이 곡은 모든 사람의 의식에 흐르는 어둠과 마성(魔性)을 찬양하며 한편의 주술처럼 록 팬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아프리칸 타악기 연주와 록 리듬, 반복된 코러스로 몰아대면서 마치 사탄을 불러내 왜곡된 천사의 현실을 질타하는 것 같다.
늘 국내 공연기획사의 섭외 1순위에 올라 있긴 하지만 롤링 스톤스가 한국에 오지 않는 한 그들의 공연을 볼 수는 없다. 이 모든 국내 록 팬들의 소망을 <샤인 어 라이트>는 거뜬히 실현시켜준다. 음악 판이 침체의 나락에 빠져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모처럼 음악이 소재가 아닌 주제로 호령하는 영화를 본다. 사실 그간 음악은 영화에 있어서 늘 양념 혹은 밑반찬이었다. 영화관에 간 게 아니라 공연장에 초대받은 것 같은 슈퍼 리얼함을 맛본다. 영화의 측면이든 음악이든 부활의 기운을 얻을 작품이다. 관객들도 롤링 스톤스의 발광을 보며 긴 나른함에서 벗어나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역동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