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CBS FM < 뮤직 네트워크 > 진행으로 DJ 데뷔
CBS FM < FM POPS > 진행
2001년 SBS 파워 FM < 팝스 클럽 > 진행
2002년 CBS FM < FM POPS > 진행
유년 시절부터 팝송을 들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팝을 좋아하셔서 우리 집엔 얼 그랜트(Earl Grant)나 피터 폴 & 매리(Peter Paul & Mary) 같은 올드 팝이 릴 테이프로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얼 그랜트의 'The end'나 피터 폴 & 매리의 'Lemon tree'와 같은 노래들을 방송에서 틀 때마다 옛 생각에 잠기곤 한다. 누나도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팝과 인연을 맺었고, 난 잘 알지도 못한 채 초등학교 때 누나가 듣던 음악을 귀동냥으로 들으면서 팝의 세계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팝에 몰두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이글스(Eagles)의 < Hotel California >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황학동이나 청계천에 가서 이 음반을 백판으로 구입해 참 열심히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들과 음악 정보와 앨범이나 카세트를 교환하면서 팝에 관한 지식을 늘렸다. 그 당시 서울 신촌에는 <목마레코드>라는 음반 가게가 있었는데 나는 그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야했다. 버스가 오면 타는 게 정상이었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그 가게의 스피커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듣기 위해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기도 했다.
중2, 중3 때는 퀸(Queen)의 앨범 < Jazz >을 좋아했다. 물론 그 이전에 퀸의 노래들을 듣긴 했지만 이 음반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퀸이라는 밴드에 몰입했다. 특히 'Don't stop me now'를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2002년, 송승헌과 권상우가 주연한 영화 < 일단 뛰어 > 사운드트랙의 음악 감독을 맡게 되었을 때 퀸의 'Don't stop me now'를 1번 트랙으로 뽑았다. 영화 오프닝에 흐르는 노래가 바로 이 곡이다.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비지스(Bee Gees)의 1979년 앨범 < Spirits Having Flown >이 발표되었는데 이 음반을 듣곤 거의 이성을 잃었다. 미국 차트 정상을 차지한 'Too much heaven', 'Tragedy', 'Love you inside out'을 포함해 앨범의 모든 수록 곡들을 모두 달달 외울 정도였다. 특히 히트곡이 아닌 'Living together'는 나만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였다. 내 목소리가 익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음색은 저음이라서 세 형제들이 하이 톤의 가성으로 부르는 노래들이 더욱 부럽고도 경이적으로 다가왔다.
역시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음반 하나가 기억난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1980년에 발표한 < McCartney ∏ >는 음악적으로 그다지 완성도가 높은 편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황인용씨가 진행하던 < 밤을 잊은 그대에게 >에서는 매주 주말 인기 팝송을 소개했는데 이 음반에 수록된 'Goodnight tonight'가 1위를 했었다. 그때 이부자리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 곡을 들었는데 정말 포근하고 아늑했다. 그날 밤은 노래 제목처럼 정말 평화롭게 잠든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나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반에서 늘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던 모범생이었는데 어느 날 며칠 동안 무단결석을 했다. 결국엔 내가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다시 학교에 나오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그 친구 집에 갔는데 그 녀석은 갑자기 철학자가 된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이런 쓸데없는 교육은 필요 없어..”
놀라운 뿐더러 그런 용기에 입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친구 방에 바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 The Wall >이 있는 것 아닌가. 이 음반에서 싱글로 커트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Another brick in the wall'에 바로 '우린 교육이 필요 없어. 우린 생각을 지배당할 필요도 없어'라는 가사로부터 친구는 많은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이 경험 때문이지 그는 왠지 나보다 몇 발자국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1992년에 CBS 라디오 피디로 입사한 후 몇 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심야 프로그램의 제작을 맡았다. 그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온 사람이(이름은 가물가물...) 인코그니토(Incognito)의 < Positivity >를 가지고 와서 틀었는데 듣자마자 음악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그 게스트가 방송이 끝나고 돌아갈 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앨범을 놓고 갔다. 물론 나는 조심스럽게 보관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에 그 사람은 앨범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음반은 자연스럽게 우리 집으로 위치 이동(?)을 하게 되었다.
1998년 처음으로 마이크 앞에 섰을 땐 정말 틀고 싶은 노래들이 많았다. 특히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곡들에게도 에어플레이의 기회를 주고 싶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프로그램들과의 차별성을 두고자 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내가 여러 경로로 알게 된 노래들을 수입하거나 노래들을 공CD에 구워서 커다란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 가방에는 모두 50, 60장의 음반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샤카탁(Shakatak)의 < Collection >을 가장 아꼈다. 이후 샤카탁이 서서히 알려지고 결국엔 2005년에 내한공연을 한 것을 보고 마치 내가 키운 자식이 성장한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2000년에 CBS 노조는 6개월 이상의 장기간 파업을 선택했다. 그때 정말 할 일이 없어 집에 있는 컴퓨터로 서핑하면서 여러 음악들을 접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냅스터에서 모조(Modjo)의 'Lady'를 들었는데 속된 표현으로 '뿅' 갔다. 다시 방송에 복귀했을 때 이 노래, 무지무지하게 많이 틀었다.
2000년에는 정식 작가 없이 거의 혼자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방송국 입장에선 고맙겠지만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보수를 받지 않고 프로그램 진행을 도와주었던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지금은 제주 방송에서 근무하는 김도훈이란 후배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음반 한 장을 가지고 와서 들어보라고 권했다. 그게 바로 노르웨이 출신의 애시드 재즈 밴드인 디사운드(D'sound)였다. 방송에서 많이 노출했고 지금도 우리 방송에서 가장 사랑받는 팀 중 하나가 되었다. 디사운드는 벌써 두 번이나 내한공연을 가질 정도로 국내에서 확실한 지분을 차지한 것도 DJ를 하면서 가질 수 있는 커다란 보람이었다. 이 자리를 통해서 2000년 당시에 무보수로 도움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인터뷰/정리 - 소승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