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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템포 알앤비
- DATE : 2008/07 | HIT : 16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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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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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템포 알앤비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템포가 중간 알앤비' 음악을 뜻한다. 하지만 알앤비 중에서 템포가 미드인 곡은 너무나도 많다. 이 말은 한국에서만큼은 조금 특별하게 쓰인다.
미드 템포 알앤비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중간 템포의 알앤비 곡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에스지 워너비, 가비 앤 제이, 씨야 같은 그룹들이 부르는 비트가 강하고 울부짖으며 부르는 '소몰이' 발라드를 말한다. 1990년대 말에 유행한 박효신, 박정현 등의 음악을 '느린' 알앤비 음악이라 가정하고, 이후에 좀 더 빠른 템포의 알앤비 음악이 등장했다 해서 '미드 템포 알앤비'란 이름이 붙었다.
엄밀히 말하면 틀린 용어 사용인 것이다. 박자 패턴을 장르 명으로 사용한 것은 포괄 범위가 너무 방대해 자칫 오해를 살 수가 있고, 알앤비란 말도 본래 가진 의미 폭에 비해 너무 발라드 중심으로만 쓰였다. 흑인 음악 마니아들이 '미드 템포 알앤비'란 말을 결코 옳은 용어로 인정하는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미드 템포 알앤비의 시작은 브라운 아이즈(Brown Eyes)였다. 2001년 브라운 아이즈는 '벌써 일년'을 발표하며, 그 해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벌써 일년'의 음악적 특징은, 중저음의 그루브를 강조하고, 템포가 좀 더 빠르며, 어쿠스틱 악기를 적절히 활용하고, 창법은 강하게 흐느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대중들은 일제히 '좀 더 빠르고', '강하게 울어주는' 음악에 매료되었다.
곧바로 비슷한 음악들이 양산되었다. 엄정화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에이치(H)의 '잊었니'가 대표적이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벌써 일년'을 모방하고 있었다. 빠르게 가요계를 잠식하던 이 패턴은 2004년 에스지 워너비가 'Timeless'를 발표한 이후로는 완전히 하나의 대세로 자리를 굳혔다.
에스지 워너비의 2집 < 살다가/죄와벌 >의 성공은 결정적인 계기였다. 당시 가요계 상황은 매우 안 좋았다. MP3 문제가 한창 전국을 뒤 흔들었고, 음반계 불황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에스지 워너비는 무려 앨범을 35만장이나 팔아치웠고, '죄와 벌', '광', '살다가' 등, 같은 앨범에서 여러 개의 히트곡이 숱하게 쏟아졌다.
이것은 곧 '불황 속의 성공 모델'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다른 말로 '손쉬운 성공 모델'이기도 했다. 가요계는 급속도로 에스지 워너비와 같은 색(色)으로 물들여 나갔다.
에스지 워너비 붐이 일면서 미드 템포 알앤비 음악은 그 색깔을 살짝 달리한다. 분위기가 훨씬 비장해지고, 창법도 더 과격하게 울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미드 템포 알앤비가 주로 '편곡'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젠 '창법'에 더 큰 무게가 실렸다. 이런 변화가 뚜렷이 나타난 것은 에스지 워너비의 2집 < 살다가/죄와벌 >였다. 1집의 히트곡 'Timeless'가 전형적인 미드 템포 알앤비였다면, 2집의 '죄와벌', '광'은 완연한 '소몰이'였다.
이후로 미드 템포 알앤비는 무조건적인 베끼기 모델로 변질되어,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모방하는 상업적 음악이 되어버렸다. 가비 앤 제이, 씨야, 엠투엠 같은 가수들이 우후죽순 등장했고, 비슷한 창법, 편곡, 작곡 패턴의 곡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많은 곡들이 있어도 음악 패턴은 늘 똑같았다. 창법은 항상 잔뜩 비장하게 힘을 주어 힘껏 울었고, 작곡은 주요 멜로디로 넘어갈 때 급격하게 코드를 바꾸는 것이 정형이었다. 엠투엠의 '세 글자', 가비 앤 제이 'Happiness', 씨야 '여인의 향기' 같은 곡을 비교해서 들어보자. 가수만 다를 뿐이지 어떠한 차이도 발견할 수 없다. 그만큼 소몰이 열풍은 노골적이었다.
'소몰이'는 주변 가수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아니면 뜨지 않는 상황까지 갔다. 김종국은 '제자리 걸음'에서 에스지 워너비를 모방해 연말 가요 시상식을 석권했으며, 나중엔 정통을 추구하던 발라드 가수들까지 하나 둘 씩 '소몰이' 창법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곧 가요계가 온통 울지 않으면 돈이 안 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일방적인 코드 획일화에 따른 반작용도 있었다. 소몰이에 대한 반감에 힘입어 오히려 고전적인 창법과 '힘 빼기'를 선언한 가수들이 호응을 얻은 것이다. 이승철의 인기는 바로 이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긴 하루'에서 보여준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악은 한창 '소몰이' 울기에 지쳐있던 대중들의 귀를 편안히 잡아끌었다. 소몰이의 주요 히트곡들을 작곡한 조영수에 맞서 '긴 하루'를 작곡한 전해성이 히트 작곡가로 떠오른 것은 이 지점에서 시사적이다. 2007년엔 박효신도 < The Breeze Of Sea >에서 완전히 힘을 뺀 창법으로 돌아왔다. 지겹게 반복된 '울어대기'에 지친 대중들이 뼈 있는 반론을 던졌고, 그것이 먹혀들었다.
비판은 많았지만 그러나 인기는 지속되었다. 아무리 지겹다고 원성이 나와도, '소몰이'라는 모욕적인 딱지가 붙었어도, 일단 그런 식의 곡을 발표하면 성과는 좋았다. 차트에서 성공했고, 특히 음원이 잘 팔렸다. 그래서 미드 템포 알앤비는 한 동안 시들지 않았다.
하향세는 2007년에 와서 찾아왔다. 그 해 소녀시대, 원더 걸스, 빅 뱅 등의 '아이돌 열풍'은 발라드보다는 댄스를, 울부짖음보다는 재롱을 선호하는 음악 풍토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UCC와 텔 미 댄스에 열광했고, 소몰이는 뚜렷이 하향 곡선을 그렸다. 같은 해 김동률과 토이가 1990년대 붐을 일으키면서 '복고'와 '정통'의 문법이 강조된 것도 이들의 소강상태와 무관치 않다.
미드 템포 알앤비는 이제 완전히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요즘은 오히려 잔뜩 비장하고 처절히 우는 곡을 들고 나오면 '시대에 뒤처졌다'거나 '촌스럽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러고 보면 유행은 그렇게 덧없는 것이다. 원조 격인 에스지 워너비도 2006년 '내 사람 : Partner for life' 이후로는 국악, 아이리시, 컨트리 등의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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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 이대화(dae-hwa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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