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댄스 음악은 미국의 그것에 상대적으로 멜로디에 더 역점을 두고, 드럼 머신이나 시퀀스를 사용한 리듬과 비트는 매우 반복적이다. 그래서 유로 댄스는 친근한 선율과 기계적인 사운드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미 대륙에 비해서 유럽에 살고 있는 흑인의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리듬과 비트에 있어선 최적의 인프라를 가지고 태어난 흑인들의 그 동물적인 바운스 감각을 음악 속에 끌어들이기엔 유럽에서 호흡하는 흑인들의 수가 대서양 건너편보단 턱없이 부족하다.
다른 하나는 유로 디스코의 메카가 독일이라는 점이다. 경공업보다는 중공업이나 전자공업에 중점을 둔 독일의 이러한 국가육성정책은 음악에 그대로 나타난다. 독일 출신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나 노이(Neu) 같은 뮤지션의 음악이 바로 인더스트리얼이나 전자음악의 선구자로 회자되는 것 우연이 아닌 중요한 포인트다. 드럼 머신을 이용한 유로 댄스 음악도 바로 이러한 구조에서 탄생한 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미국의 디스코를 받아들인 유로 디스코의 중심지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독일(당시엔 서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보니 엠(Boney M), 실버 컨벤션(Silver Convention), 아라베스크(Arabesque), 징기스칸(Dschinghis Khan) 그리고 영국 출신이지만 서독에서 활동했던 이럽션(Eruption) 등이 모두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인기를 얻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60년대 후반 서독에 정착한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서머(Donna Summer)는 미국에서 인기를 얻기 전인 1970년대 중반까지 서독의 뮌헨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 당시 유로 디스코를 '뮌헨 사운드'라고도 했다(마치 '필라델피아의 사운드'나 '멤피스 사운드'처럼). 훗날 도나 서머는 유럽의 댄스음악과 미국 디스코의 통로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멜로디가 뚜렷하며 반복적인 리듬이 특징인 유로 댄스는 미국보다 빨리 1970년대의 디스코텍과 작은 클럽에서 유행했던 테크노와 하우스 뮤직 등의 스타일을 폭넓게 받아들였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귀에 쉽게 들어오는 장점을 소유하고 있는 유로 댄스는 그 체질상 아래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노래를 부른 가수나 뮤지션보다는 그 음악을 주도한 프로듀서나 제작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앨범보다는 한 두 곡의 단발 싱글로 승부수를 띄우기 때문에 원 히트 원더(반짝 히트)가 많다는 점이다.


독일 외에 유로 디스코 문화에 커다란 역할을 한 또 다른 유럽 국가는 바로 프랑스다.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춤추던 장소를 일컫는 디스코텍은 바로 불어 'Discotheque'에서 유래된 것으로 원래는 프랑스어로 레코드 케이스나 레코드 수집 실을 뜻하지만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디스코텍으로 그 의미가 정의되었다. 그 정도로 디스코는 미국에서 발생된 음악이지만 유럽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스페인의 여성 듀엣으로 'Yes, sir I can boogie'의 바카라(Baccara), 'Sun of Jamaica'의 굼베이 댄스 밴드(Goombay Dance Band), 'Sexy music'의 놀란스(Nolans), 'Wanted'의 둘리스(Dooleys)도 1980년을 전후한 시기에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린 그룹들로 유로 디스코의 대표적인 팀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