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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우기
- DATE : 2005/04 | HIT : 1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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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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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우기의 태동은 블루스의 역사 속에 맥이 있다. 흑인들의 블루스에서 파생된 장르 가운데 하나로, 1920년대 초반 블루스 연주자들의 매우 독특한 피아노 연주 스타일에서 그 기원을 둔다. 초기 원시적인 형태는 남부 흑인들의 댄스 뮤직과 유사한 형식으로 출발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 무렵, 가난한 남부 시골의 흑인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백인 지배 사회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쪽의 시카고나 캔사스 시티로 이주하였다. 도시에 정착한 흑인들이 '배럴하우스(barrelhouse)'라 불리던 통나무로 만들어진 하급 술집에서 자신들의 유희를 위해 '먹고 마시고 놀자' 식의 연주를 즐기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교육을 받지 못한 블루스 가수들 역시 그곳에서 자신의 한을 토로하듯 피아노를 치면서 위안을 삼곤 했다.
결국 부기우기는 인종 차별에 신음한 흑인들의 개혁운동이 곧 재즈의 열정과 결합되면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블루스와 차이를 들라면, 기타가 아닌 피아노가 중심이 되어 다이내믹하고 리드미컬한 연주 패턴을 즐긴다는 게 특징이다. 그런 경쾌한 맛으로 인해 다른 말로 하자면 홍키 통크(honky tonk)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연주법은 현대 재즈 음악에서 흔히 나타나는 임프로비제이션(improvisation)과 싱코패이션(syncopation) 등장의 모태가 된다. 대체로 재즈 빅밴드에 의해 또는 소규모 합주 형식으로 연주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 때문에 부기우기는 솔로 피아니스트들의 개성적 표현 방식, 즉 작풍(作風) 체계의 확립을 가져왔다.
최초 부기우기의 명칭은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클로렌스 '파인톱' 스미스(Clarence 'Pinetop' Smith)의 1928년 레코딩 'Pinetop's boogie woogie'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부기우기 작곡가로 기록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파인톱에게 레슨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시카고 출신의 알버트 애먼스(Albert Ammons)와 미데 '럭스' 루이스(Meade 'Lux' Lewis), 캔사스 시티에서 자란 피트 존슨(Pete Johnson) 등이 부기우기를 대중적 장르로 견인한 유명 연주자들로 손꼽힌다. 특히 미데 럭스 루이스의 1931년 작품 'Honky tonk train blues'는 부기우기의 멋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곡이다.
나중 밥 딜런의 음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1930년대의 탤런트 스카우트 존 해몬드(John Hammond)는 부기우기를 활성화시킨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1938년 카네기 홀에서 '영가에서 스윙까지(From Spirituals To Swing)'라는 콘서트(카운트 베이시, 베니 굿맨 등 당대 재즈와 블루스의 톱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를 주관하며 마침내 백인 청중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피트 존슨, 미데 럭스 루이스, 알버트 애먼스 등 피아니스트 셋이 연주한 'Cavalcade' 그리고 그들이 베니 굿맨 섹스텟, 카운트 베이시 밴드와 잼 세션을 한 'Lady be good'은 즉각 미국 음악계에 부기우기 열풍을 야기했다. 이로써 블랙 뮤직이 진정한 대중음악으로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런 존 해몬드의 업적은 후대에 프로듀서로는 최초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영예로운 훈장으로 이어졌다.
카네기 홀 공연의 막대한 효과로 인해 부기우기는 범국민적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1930, 40년대 스윙 시대가 개막되면서 백인 백밴드 주자들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해나간 동시에, 모든 재즈 밴드들이 적어도 부기우기를 자기들의 연주에 한 곡 정도는 삽입할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그러면서 재즈 분위기 속에서 솟아난 부기우기와 함께 흑인음악인 블루스의 존재도 차츰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뜨겁게 불타오르던 부기우기의 열정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그 영향은 지속되었고, 부기우기를 수용한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와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의 피아노 기법은 그 후로 리듬 앤 블루스와 로큰롤의 탄생에 결정타를 날렸다. 제리 리 루이스와 리틀 리처드는 말할 것도 없는 초기 로큰롤의 영웅들이다.
부기우기가 갖는 역사적 중요성은 같은 로큰롤의 거장 척 베리의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부기우기(boogie-woogie)로 불리곤 했고, 블루스(blues)로 불리곤 했다. 그리곤 다시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로 불리곤 했다. 그것은 이제 록(rock)으로 불린다!" 척 베리가 말한 순서만 챙긴다면 무난히 록의 기원은 파악된다(부기우기-블루스-리듬 앤 블루스-로큰롤).
최근 국내 개봉작 < 레이 >에서도 부기우기의 성질은 잘 묘사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백인 음반 제작자가 “노래가 지루해! 좀 더 경쾌하고 빠르게 가자”고 주문을 하게 되는데 그때 레이 찰스가 즉흥적으로 바꿔 부른 'Mess around', 'What'd I say'의 표현 기교가 바로 부기우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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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 김獨(quincyjon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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