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의 세월이 지나서 이수영을 다시 만났다. 2003년 '덩그러니' 때 처음 IZM과 인터뷰를 가진 바 있던 그는 7집 앨범(7th)에서 '그레이스'가 호응을 얻고 있는 지금, 다시 대화의 자리를 제공했다. 목동 한 빌딩의 스카이라운지에서 만난 그는 “빨리 만나고 싶었는데 이제야 뵙게 되네요.”라고 겸손하게 운을 뗐다. 연예계 안팎에서 '바른 생활'로 유명한 가수답게 답변은 시종일관 정성스럽고 정숙한 톤을 유지했다.
그 2년 반 동안 이수영의 '신상변화'는 괄목하고도 또한 위기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2003년 마지막 날 MBC 가수왕 상을 받은 것, 곧바로 신년벽두에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이 50만장의 대박을 치면서 '리메이크' 열풍의 기폭제가 된 사실은 그가 인기가수에서 '최고가수'로 점프하는 신분상승을 의미했다. 하지만 2004년 중반에 낸 6집 '휠릴리'는 부진했고, 작년에는 전(前) 소속사와 계약시점이 만료된 시점에서 남느냐 옮기느냐는 고통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남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수영은 과감하게 새 소속사(리쿠드 엔터테인먼트)로의 이적을 택했다. 변화와 동시에 휴식을 기하고 싶어서였다. “그간 눌려 있었고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속박에 시달렸어요. 하지만 전 위기도 행복으로 봅니다. 지금은 더 홀가분하고 영적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새 기분을 팬들도 아는지 현재 신보 7집과 '그레이스'에 커다란 성원을 보여주고 있고, 실제로 새 음반은 판매부문에서 2개월 동안 연속 수위를 기록하며 17만장의 판매량이라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요즘 이 정도면 가히 '평정'이다.
이수영은 “신보는 그간의 나와 내 음악을 정리한 앨범이지만 미래의 이수영을 제시한 곡들이 담겨있어요. 앨범 전체를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고 당부했다. (이번 인터뷰에는 주변 지인들에게 매번 '이수영님'으로 호칭하면서 '이수영맨'을 자처하는 IZM의 필자이자 떠오르는 음악평론가 배순탁이 대동했다. 그는 이수영으로부터 친필 사인 앨범을 받고는 '내 생의 잊지 못할 감격'이라며 흥분했다)
갑작스레 TV에 얼굴을 자주 비치던데. 노래를 부르지 않은 오락프로그램들에도 많이 나와 혼란스럽다는 팬들이 많습니다. 전화로 이번에는 TV활동도 많이 한다고는 했지만 왜 갑자기 오락프로 출연 전략으로 나가는 건가요?
“전략이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에요. 신보 녹음을 마치고 4일 동안 시간이 났고 '이제부터 전쟁이다!'하고 여기고 있던 찰나, 친구 (박)경림이한테서 SBS < X-Man > 출연요청 전화가 왔어요. 전 출연보다도 친구 경림이와 4일간 쉰다, 그것도 장소가 일본 온천이었거든요. 경림이랑 일본에 온천으로 놀러간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노래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그런 프로에 나가서, 더욱이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코믹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바람에 '이수영 같지 않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미지 전복을 걱정하는 거지요.
“알아요. 저를 음악으로 좋아하는 분들은 우려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엔터테이너로 전락하지 않을 겁니다. 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 원치 않는 프로그램에도 나가게 됐지만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전 본래 의도하면서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하다 보니 상황이 벌어진 것뿐이죠. 다만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임합니다. 단지 이번은 반응이 좋았던 거죠. 그래서 많이 얘기되고. 출연해서 호응이 생기니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구요. 호응이 없으면 좀 그렇잖아요.”
타이틀곡 'Grace'에 이기찬이 맡은 고음 코러스 부분이 잘 처리되었다고 보는데, 어떻게 그가 참여하게 됐나요?
“즉흥적이었어요. 녹음 중에 우연히 기찬이가 커피 들고 찾아왔어요. 감기가 심하게 들어 목소리가 전혀 안 나왔지만 부탁을 했죠. 막상 부스에 들어가니까 역시 프로의 면모를 보이더군요.”
'Grace'가 호응을 얻게 된데는 뮤직비디오에 현재 최고의 핫(Hot) 인물인 이준기가 나왔다는 사실도 작용했죠. 그의 출연은 이수영 생각인가요.
“소속사 분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섭외한 거에요. <왕의 남자> 시사회 때 섭외했죠. 전 영화를 개봉된 지 3일 지나서 봤는데, 이후 대박을 쳐서 뮤직비디오도 덩달아 관심이 증폭된 것 같습니다. 이준기씨 덕을 본 것은 사실이죠.” (이 대목에서 '사적으로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니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잘 생긴 사람은 꼭 그 값을 하잖아요.'라고 답했다)
얼마 전 제가 한 신문에 이수영씨를 '미스 애버리지 코리아'라고 규정했죠. 시대의 트렌드인 비주얼과 섹시와 무관한, 지극히 평균적인 외모의 여성이라는 뜻에서라고 했는데, 솔직히 그러한 묘사가 섭섭하지는 않습니까?
“아니요. 제가 지금 텔레비전 출연(KBS <스펀지>) 때문에 화장을 했거든요. (웃으면서) 그래서 그나마 이 정도지 화장 지우면 정말 애버리지 얼굴이에요. 저도 동의합니다.”
후속곡은 정했습니까. 'Grace' 말고 현재 '시린' '사랑도 가끔 쉬어야죠' 그리고 '우리' 등도 좋아하는 팬들이 많은데.
“후속곡은 '시린'입니다. 이 곡이 원래 타이틀곡으로 내정이 되어있었는데 막판에 'Grace'로 바뀌었어요. '우리'는 CCM(기독교 대중음악)곡이라서 이미 홍보가 되어있는 상태라서 알려진 거구요. 제가 지금까지 조금씩 스타일을 바꿔왔는데 '우리'는 이번 신보에 기한 변화를 대표하는 곡입니다. 도입부부터 다르고 읊조리는 부분이 새롭죠.”
'우리'는 물론이고 두곡 정도 빼고는 앨범 대부분의 가사를 직접 썼는데.
“가사에 대한 욕심은 원래 많았어요. 1년 동안 쉬면서 신앙적으로 더 깊어졌고 '쏟아낼' 부분이 필요했어요. 마침 프로듀서가 '가사를 이수영의 것으로 하자' '네가(이수영이) 가진 것도 많이 내놓은 식으로 하자'고 해서 제가 노랫말을 많이 쓰게 됐습니다.” (프로듀서인 D. Key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30대 후반의 신인 급 인물로, 본명은 이영기라고 한다. 그는 이수영의 5.5집부터 참여해왔다.)
그래서 묻는 건데요, 'Grace'는 '나를 누르던 앙금 같은 기억도 숨을 몰아서 힘껏 뱉어낸 오늘 너를 잊기 좋은 날... 눈물쯤은 흘려줘도 괜찮아 라라 다 슬픔 씻어내기 위한 거니까 이젠 자유로운 내가 될 거야...'라는 가사로 되어있죠. 그 내용은 전 소속사에 대한 감정 같기도 하고 사랑 얘기 같기도 한데, 정확히 무엇을 표현한 거죠? (이수영의 7집 앨범은 원래 지난해 11월 무렵 출반할 예정이었는데 전 소속사는 때마침 베스트앨범을 출시했다. 이 바람에 신보의 출시가 지연되어 해를 넘기게 된 것이다)
“이전 소속사와 관련한 새 출발의 의지도 있고 저 개인적인 사랑 등 여러 감정들이 섞여있습니다. (개인적인 사랑이 뭐냐고 묻자) 4년 전에 한 사람이 제게 많은 아픔을 주었죠. 남자친구였고 서로 좋아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아 결국 깨졌어요. 그는 사랑에 관해서는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특이한 사람이었어요. 그에 대한 감정이 가사에 녹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죠.”
9번째 트랙인 '사랑도 가끔 쉬어야죠'가 얼핏 듣기에는 다른 수록 곡들보다 더 잘 들립니다. 이 곡을 후속곡으로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더 대중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주변이나 모니터에서도 이 곡을 추천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나 '뉴 이수영'은 아니죠. 대중성을 따지고 돈을 벌려면 이 곡으로 갈 수 있겠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린'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럼 새로운 이수영을 표현한 곡들은 신보에서 어떤 것들인지.
“후속으로 정해진 '시린'을 비롯해서 '그 길에서...'와 '정말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그리고 '끝'을 들 수 있습니다. '그 길에서...'는 전체에서 가장 무난하기고 하구요. '정말 다 잊은 줄 알았는데...'는 역시 덜 대중적이지만 (앨범에) 있어야 하는 곡이죠.”
녹음작업 시 프로듀서와 이수영 간에 나눈 대화는 무엇이었나요?
“프로듀서와 참 많은 음악적인 얘기를 나눴습니다. 전에는 그러지 못했죠. 그래서 이전 앨범은 프로듀서 앨범이지 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소속사가 바뀌었다고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조금씩만 달라지자'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다만 솔직한 제가 더 필요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의 모양을 갖고 있되, 좀더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면을 넣자는 거였죠. 저에게 전부는 하나님이죠. 솔직하려면 감추지 말아야죠. 마지막에 기도를 넣은 것도 솔직한 제 자신을 담자는 뜻이었습니다.”
녹음 분위기가 무척 좋았던 것 같습니다.
“신보는 한마디로 '기도하면서 만든 앨범'이에요. 사장(곽승훈)님부터 작업에 가담한 사람 전부 곡 하나하나 만들면서 기도했습니다. 녹음실에 담배연기도 없었고, 즐거운 얘기 좋은 얘기 하면서 작업했죠.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같은 사람이 작업에 임했지만 '전혀 다른 마음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결과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음악적 자유를 맛봤기에 기뻤던 것 아닐까요.
“그래요. 솔직히 신보 작업에서 실제로 어마어마한 굉장한 변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느끼는 게 그래서일 겁니다.”
이번 음반을 간략하게 정의한다면?
“편안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곡의 느낌이건 배열이건 가사이건 편안함을 목표로 했습니다. 저도 요즘 사람인데 요즘 음악이 어른들에게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불편하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깔끔함이죠. 제 보컬을 더 깔끔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느낀 건데요, 제 이전 노래가 깔끔하지 못했다면 쉬지 못해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전에는 조금도 못 쉬었기 때문에 너무도 힘들었고 때문에 보컬도 탁했죠.”
이수영이 목표하는 보컬은 무엇인가요.
“보컬에서 더 힘을 빼야 한다는 거죠. 사실 저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팬들도 마찬가지죠. 원래 제 팬들은 조금 나이가 많았고. 더 '한국적인' 느낌을 주는 보컬을 원합니다. 그러면 젊음이 주도하는 주류에서 조금씩 밀릴 수도 있겠지만 주류 안에서 그런 스타일이 통하는 것을 실현하고 싶어요. 더 '오래' 더 '먼' 곳을 보고자 합니다. 전 숲을 보고자하고 나무만을 보는 단계가 싫습니다.
텔레비전 출연은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편하기는 합니까?
“솔직히 이전에 방송은 가시방석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콘서트에서 느끼지 못했던 흥을 방송무대에서 맛보고 있습니다. 마음이 달라져서죠. 지금 단기간에 가장 많은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즐겁게 임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의해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이것을 물었다. 지금까지 돈은 많이 벌었느냐고. 그러자 이수영은 아주 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전 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가질 수 없는 것도 가졌습니다. 은총입니다. 다른 스타보다 번 것이 덜 할 수도 있지만 전 부족하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이 정도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인터뷰: 임진모
정리: 임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