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라는 경제적 위기 속에서, 달콤한 팝이 귀를 간질이는 아이돌 팝의 홍수 속에서 탄생한 그룹 '자화상'은 참 담대한(?) 신인이었다. 방송출연의 횟수가 음반 판매량과 연결된다고 굳게 믿는 이들을 뒤로한 채 라디오 전파에만 기댄 '우직한 정공법'으로 승부했으니.. '보여주는 음악'에서는 채울 수 없었던 갈증을 '들려주는 음악'에서는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만족스럽게도 그들의 음악은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여학생들의 여린 감수성을 마구 휘저어 놓으며, 추억을 공감하며, 팬들과 함께 자랐다. 그들의 음악이 어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도 강한 이유였다.
이후, 나원주는 1997년과 98년, 자화상의 이름으로 2장의 앨범을, 2003년 나원주의 이름으로 솔로 1집을 세상에 내놓으며 작곡으로 편곡으로, 또 건반 세션으로도 일급 대우를 받는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했다. (그의 커리어는 이소라, 윤종신, 박정현, 김건모, 성시경, 린애, 이문세 등의 앨범 크레딧이 증명해준다.) 피아노를 기반에 둔 그의 음악은 여전한 감성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장차 뮤지션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교과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2년 만에 영화의 음악 감독으로서, 자신의 2집이자 < 야수와 미녀 > ost와 함께 돌아왔다.
앨범에서 들을 수 있는 치밀함(?)으로 미루어보아, 약간은 까다롭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는 그의 여유 있고 재치 있는 대답으로, 2시간이라는 다소 긴 인터뷰 시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원래, 성격이 밝으냐는 질문에 “그래요? 아닌데.. 원래 처음에는 다 차갑게 보시더라고요”라며, 웃는 그는 요즘에도 신보 활동 외에 싱글 형식의 앨범이 될 김범수 곡 작업으로 바쁘다고 한다. 그런 그를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보는 나원주의 2집인 동시에 영화 < 야수와 미녀 > OST이기도 한데요. 이렇게 작업한 이유라도 있나요?
사실 영화에 삽입된 곡은 앨범의 3곡정도 뿐이예요. 영화 음악이라는 것이 저한테는 참 매력적이었어요. 아마 다른 뮤지션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물론 앨범 홍보를 위한 마케팅적인 전략도 있었고요.
영화에서는 '나처럼...,나만큼'이 주된 테마로 쓰였는데, 얼마 전 방송에서 '그대 때문이죠'를 발랄하게(?) 부르는 것을 봤습니다. 어색하지 않았나요?
물론 많이 어색했습니다. (웃음) 노래가 좀 발랄한 스타일이예요. '나처럼...,나만큼'이 영화의 타이틀 곡으로 쓰였지만, 나원주의 2집 활동을 하면서 피쳐링을 한 김조한씨와 같이 활동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영화와는 달리 '그대 때문이죠'로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무엇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가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앨범보다도 곡들이 제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가사도 좋은 가사를 쓰고 싶었어요. 지난 앨범들은 아무래도 가사 보다는 곡을 중심으로 작업을 했죠. 이번 앨범의 모든 곡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제가 쓰고 싶을 때 썼어요. 곡이 안 써질때는 과감히 접어버리고... 그래서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사도 곡도 예전 앨범보다는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편곡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죠.
특히 애착이 가는 곡이 있나요?
'오늘처럼 다시 눈이 내리면'과 'Just for you'요. 특히 '오늘처럼 다시 눈이 내리면'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딱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저만 할 수 있는 제 스타일이요. 작은 자신감 같은 거죠. 만약 계획적으로 작업했던 솔로 1집 같은 경우였다면, 두 곡 중 한 곡은 앨범에 넣지 않았을 거예요. 피아노를 중심으로 쓴 비슷한 풍의 곡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두 곡 모두 좋았기 때문에 넣게 되었어요.
이번 앨범도 물론이고, 자화상 때의 '어쩌란 말인지', '빠리야리야'를 시작으로 솔로 1집 때는 세계적인 브라스 세션맨인 제리 헤이(Jerry Hey)팀과 작업을 했는데요. 특별히 브라스(관악기)편곡에 욕심을 내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나라가 다른 분야보다 관악기 쪽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스트링은 많이 해서 나아졌지만요. 그래서 제 음반에서 한 두곡씩은 꼭 하고 싶었어요. 저 역시 부족했기 때문에 곡을 쓸 때마다 공부를 많이 했죠. 타워 오브 파워(Tower of power)나 애시드 계통의 음악들을 많이 들었어요. 시카고(Chicago)의 음악도 많이 들었죠.
스트링(현악기)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왔는데요. 요즘 편곡에 있어서 스트링의 패턴이 너무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여기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어요.
아무래도 히트될 수 있는 음악의 영역이 좁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음반 시장도 문제이고요. 미국을 예로 든다면 미국은 그만큼 시장이 받쳐주거든요. 우리는 그런 시장이 되지 못해요.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앨범시장이 좋아진 게 아니라,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이렇게 내나, 저렇게 내나 다 똑같기 때문인 거죠. (웃음)
나원주는 내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화성에 중심을 두는 작곡가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10년 동안의 음악 활동 중 화성으로써의 한계라고 할까요? 곡들이 때로는 너무 비슷비슷한 음악들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혹시 다른 장르의 음악을 돌파구로 찾을 생각은 없는지요. 예를 들면 록 음악 같은 것이죠.
저는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대중에 맞춰 음악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우연히 대중과 코드가 맞았을 때는 운이 좋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거죠. 만약 제가 10곡을 작곡했는데 듣는 이들은 10곡이 전부 똑같다고 말하더라도 음악을 만든 저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전부 다르죠. 물론 록을 좋아해요. 하지만 제가 쓰고 싶지는 않아요. 아직 전 올라갈 데가 많고, 지금 이 시점에 제가 할 수 있는 부분 내에서 깊게 파고들고 싶어요. 저는 오히려 재즈 쪽이죠. 제 음악의 반은 재즈입니다.
1973년 신당동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 예대를 거쳐 1995년 제7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데뷔한다. 이때의 수상곡은 지금도 그의 주된 레퍼토리이며, 이승철이 리메이크 하기도 한 '나의 고백'. 지금은 자화상 시절의 음악이 순수해서 좋지만, 한 때는 이 곡을 너무 많이 불러서 싫어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이듬해에 같은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정지찬과 1997년 자화상을 결성하게 된다. 자화상으로 2집까지의 활동 후, 각자 솔로로 전향한 그들은 우연치 않게 두 장의 솔로앨범이 거의 같은 시기에 발매되어 일각에서는 정서적인 충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하자, “정말 우연이예요. 지금도 지찬씨와는 자주 만나요.” 라며, 크게 웃는다.
정지찬과 같이 활동하게 된 계기를 듣고 싶어요.
군대 있을 때죠. 군악대에서 있었어요. 그때는 제가 고참이었고요. 고참이었던 그때가 좋았죠 (웃음). 1992년쯤에는 밀러바가 유행했는데, 거기서 같이 연주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러다가 1995년 유재하 가요제에서 제가 먼저 수상을 하고, 그 다음해에 지찬씨가 용기를 얻어 대회에 나가서 수상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자화상을 만들기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나원주가 생각하는 정지찬의 음악은 어떤가요.
예를 들어 정지찬이 열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저는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예요. 다 장, 단점이 있죠. 여러 가지를 다 할 수 있지만, 깊이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는 반면, 저는 그 열 가지를 다 할 순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깊숙이 파고들 수 있고요. 그런 차이가 있죠.
그럼, 자화상시절부터 앨범을 차근차근 정리해보죠.
자화상 1집은 '순수'예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음악만 했죠. 물론 정지찬과의 호흡도 좋았고요. 무엇보다 그때는 목소리가 순수했죠. 예뻤어요. (웃음) 지금은 많이 삭았는데..
자화상 2집은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앨범이예요.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1998년~99년이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어요. 슬럼프이기도 했고.. 제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틀려졌어요. 사람을 만난다는 것,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 그런 것들 때문에요. 순수를 잃게 되는 고민 뭐 그런 것들이었죠. 그때는 오는 전화도 안받았어요.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자화상 때의 앨범은 “몇장 까지 내겠다” 이런 계약이 아닌 한 장씩 한 장씩 계약한 거였어요. 기획사도 달랐고요. 이런 상황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솔로활동을 생각하게 된 거죠.
솔로1집은 시간이 많아서 편하게 작업한 앨범이에요. 슬럼프에서 벗어난 시기이기도 했고요. 작업하면서 재밌는 일들도 많았어요. 그 시기가 아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기로의 전환기였던 것 같아요. 컴퓨터도 말을 잘 안 듣고, 테이프도 끊어지고 그랬던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요. 이번 앨범과 차이가 있다면 아까 말했듯이, 이번 앨범은 쓰고 싶을 때 쓴 곡들인 것에 반해, 1집은 “이제부터 곡을 써야 되겠다” 하고 시작했던 앨범이예요.
오늘날 나원주의 음악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요.
물론 가스펠이죠.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때 들었던 음악의 90프로는 가스펠이었고 10프로가 팝이었어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 때 들었던 가스펠은 주로 최덕신 음악이었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가요계에 유재하가 있으면 가스펠에는 최덕신이 있다고요. 제가 가스펠 음반에도 몇 번 참여했는데요. 가요감성이 묻어 난다기 보다 찬송가 적인, 교회음악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물론 이때 들었던 음악들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어렸을 때 힘들게 살았던 건 아닌데 음악을 할 여건이 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쉴 때마다 음악을 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자체가 저에게는 연습이 되었던 것 같아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했죠. 결국 음악은 즐겨야 되는 것 같아요.
나원주가 바라보는 지금 우리 가요는 어떤가요?
음악의 중심은 연주라고 생각해요. 연주가 곧 시작이죠. 그런 면에서 아직 연주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팝과 달라요. 그들을 따라 잡을 순 없죠.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건, 버틸 수 있는 건 바로 '가요'라는 거예요. 그 외적인 것들은 아직은 멀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 건 발전이 빠르다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흉내내는 것이 굉장히 우수한 것 같아요. (웃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다만, 너무 늦게 시작되었죠. 음반 시장만 좋아진다면, 우리 가요의 미래는 밝다고 저는 생각해요.
음악을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백인의 성실함과 흑인의 감각을 배우라고 말하고 싶어요. 백인들은 아무리 잘해도 열 시간 이상씩 연습을 하거든요. 밥 먹고 음악만 하는 거죠. 그리고 흑인의 솔직함과 자연스러움, 한마디로 그루브, 그걸 느끼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음악은 최대한 많이 들으라고요. 그러면 언젠가 그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게 되거든요.
마지막으로 요즘 어떤 앨범을 듣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2집을 가리키며) “이거요, 정말 이예요. (웃음)” 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인터뷰 내내 자신이 하고 있는 음악에 대한 뚜렷한 목표와 자신감, 우리 시대음악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할 뿐이고 그것이 사랑을 받으면 좋고, 그렇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냐는 그의 이 배짱 두둑한 말에서 어쩌면, 조금은 외로운 싱어송라이터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자신의 음악'만을 들려주는 소신 있는 소수의 '뮤지션'이기에, 그와 함께 자라온 팬들에게도, 같은 음악을 하는 동료들에게도 존경받고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나원주의 음악은 여성들이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니 “아닌데.. 제 음악은 뮤지션들이 좋아하더라고요. 그게 문제예요. 그게”라며 웃는 그에게 살짝 결혼에 대해 물어봤다. “집에서도 1,2년 전부터 계속 물어보세요. 때가 되면 하겠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예전의 추억거리 하나가 떠올랐다. 아마 1997-8년쯤, 희미하지만 라디오 '이적의 별이 빛나는 밤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러 뮤지션들이 모여, 퀴즈를 푸는 크리스마스 특집 코너였는데, '자화상'의 이름이 기니, 다른 이름으로 바꾸라는 진행자의 말에 나원주가 정한 이름은 '자화'도, '자상'도 아닌, 그렇다고 '원주', '지찬'은 더더욱 아닌, 하필이면 '화상'이었다. 진행자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상!”, “화상!”을 외쳐대던 그 풋풋함을 기억하는 팬들이 반길만한 사실 하나. '자화상'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이 나올 계획은 유효한 상태라는 것. “요즘 지찬씨랑 만나면, 같이 작업하자는 얘기 종종 해요. 지금은 서로 경험도 많이 쌓였고요. 음악에서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순수함을 간직한 그들의 음악은 '화상!'을 외치던 그 때 그 시절처럼 여전히 그대로이지 않을까.
인터뷰: 임진모
정리: 조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