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에 있어서든지 '소통'은 양자간의 오해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비록 작품으로 말하는 창작자의 경우라도 그렇다. '모든 것은 수용하는 사람들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창작물에 대해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속내를 슬쩍 내비쳤을 때, 받아들이는 이도 그에 대해 더욱 해석이나 공감하기가 쉬워진다.

키즈 팝과 뮤지컬 활동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김현철의 정규 9집이 발표되기 직전, 이즘에서 만난 김현철과의 인터뷰 덕분에 그의 신보를 이해하기가 조금은 수월했다. 그가 음악과 삶에 관해 가지고 있는 태도를 간략하게나마 들은 후, 대략 두 개의 큰 줄기로 해석할 수 있게 된 < Talk About L♡ve >는 그의 초심과 현재의 내공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는 앨범이다.

“서구 인물은 역시 어떤 날도 영향을 받은 팻 매스니(Pat Metheny)죠. 감성적인 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거의 모든 곡을 입으로 따라 할 정도였으니까요. 저의 최고 앨범도 그의 < First Circle >입니다.” (2006년 10월, 이즘 인터뷰 중)

김현철의 음악 행보가 '퓨전 재즈'로 시작되었다는 점과, 또 팻 매스니라는 이름을 직접 거론한다는 것을 미루어 9집에서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은 '팻 메스니의 가요화'다. '달의 몰락' 이후 전성기를 맞으면서 주로 고급스러운 대중 발라드에 심혈을 기울여왔던 것과 달리 그는 출발점으로 돌아가 오래된 진열대에서 팻 메스니를 꺼내왔다. 첫 곡 'Wonderful radio'를 비롯해 '그 언젠가는(유학)', 'Kelly', 'Espresso macchiato'가 이 대열에 속한다.

퓨전 재즈의 느낌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Espresso macchiato'가 가장 극점을 찍지만, 나머지 세 곡은 팝의 색체를 더 위시하여 듣기에 부담이 없다. 그러면서도 풍성한 사운드와 유려한 코드 진행은 노장의 심장도 아직 뜨겁게 타고 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오히려 그의 연륜이 더해져 초반기의 풋풋함과는 또 다른 맛이 느껴진다.

“다만 근래 들어 포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포크는 통기타음악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표현세계가 풍부한 음악이죠. 최근 잭 존슨(Jack Johnson), 제임스 블런트(James Blunt)와 같은 네오 포크 뮤지션들이 눈에 띄더군요. 어쿠스틱 개념의 록이든 발라드든 그런 스타일이 가슴에 와요. … 아무튼 저로서는 '기름기'를 빼는 게 목표입니다.”

타이틀곡 '결혼도 못하고…'를 시작으로 '돌아와줘요', '노을복숭아' 등 김현철의 기존 면모를 볼 수 있는 발라드에서 어쿠스틱에 대한 그의 관심이 드러난다. 그래도 해 온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주로 피아노가 음악을 주도하여 과거 김현철표 발라드와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그의 말대로 '기름기를 뺀' 흔적이 강하다. 특히 앨범의 지향을 대표하는 팝 'Talk about love'는 그의 목표를 완전히 체득시킨 노래다.

발라드의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담백하게 펼쳐지기는 하되, 멜로디의 특별한 훅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무엇보다 대표곡의 경우 아쉬움이 더하다. 재즈적 스타일이나 포크의 곁들임 등 그의 음악적 노력을 대중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싱글이다. 미디움 템포의 곡들이 유행하며 한 번에 귀에 들어오는 노래를 선호하는 시대에 딱히 강력한 자극 없이 슬픈 사연만을 강조하다보니 쉬이 눈길이 가지는 않는다. 물론 유행을 따르라는 말은 아니지만, 조금은 앨범 전체의 젊은 마인드를 대변할 수 있었더라면, 싶다.

마지막의 두 곡은 < Talk About L♡ve >가 들려주는 이 두 가지 흐름의 중간 지점에 있다. 마치 1990년대 초중반, 싱어송라이터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당시의 음악을 듣는 듯하다. 하지만 '상처'는 그 인상이 너무도 전람회의 '취중진담'이나 김동률 1집의 '잠시'와 닮아있다. 김동률과 김현철이 비슷한 부류의 작가로 인식되는 만큼, 더욱 조심했어야 할 부분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남은 반가움과 실망감이 교차하곤 한다. 일단 무사한 귀환과 어느 정도 예측한 상대의 발전된 모습에 대한 긍정이 있고, 그 다음에 기다린 시간만큼이나 상승된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에 대한 부정이 따르는 것이다. 김현철 9집은 딱 그 교차점에 놓여있다.

그러나 심적으로는 긍정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고 싶다. 가요 시장에서 실력 있는 뮤지션을 찾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이때에, 충분히 잔뼈가 굵음에도 김현철은 지속적인 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앨범은 고맙게도, 바늘구멍 같기만 한 음악계의 밝은 미래를 믿게 해준다.


- 수록곡 -
1. Wonderful radio (작사: 김현철, 이혜준 / 작곡: 김현철, 채준기)
2. 결혼도 못하고… (김현철 / 김현철)
3. Talk about love (김현철, 이혜준 / 김현철)
4. 그 언젠가는(유학) (김현철, 권순관 / 김현철, 권순관)
5. 돌아와줘요 (김현철, 이혜준 / 김보민)
6. Kelly (김현철, 이혜준 / 김현철)
7. 노을복숭아 (김현철, 이혜준 / 김현철)
8. Espresso macchiato (이혜준, 최성일 / 권순관)
9. 상처 (이혜준 / 김보민)
10. Kiss & say goodbye (김현철 / 권순관)

프로듀서: 김현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