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튼 앤 다운스(Wetton & Downes)는 생소한 이름일까, 반가운 이름일까. 눈치 빠른 후자라면 즉석에서 'Heat of the moment' 'Only time will tell' 'Don't cry' 같은 1980년대 히트곡들을 떠올릴 것 같다. 웨튼 앤 다운스는 존 웨튼과 제프 다운스, 즉 슈퍼밴드 아시아(Asia)의 멤버들이다.

아시아는 당대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의 '에센셜'이었다. 킹 크림슨 · 유라이어 힙 · 록시 뮤직을 거쳐 온 베이시스트이자 보컬 존 웨튼, 버글스 · 예스의 선율을 만들었던 키보디스트 제프 다운스를 비롯, 에머스 레이크 & 파머의 드러머 칼 파머, 예스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가 뭉친 슈퍼밴드가 아시아였다. 결성만으로 화제를 모았던 아시아는 제우스 신전을 방불케 하는 프로그레시브 군단이었지만, 그 출신에 걸맞지 않게 대중적인 '팝'의 신화를 창조하며 음악적 기대를 즐겁게 배신했다. 아시아는 장르의 골수 마니아들을 외면하고, 싱글 히트를 기록하며 빌보드 세계에서 달콤한 시대를 보냈다.

밴드는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아시아의 활동 중단 이후 1997년 존 웨튼과 제프 다운스가 각자의 솔로 작업을 한 앨범에 모아 차기 활동을 모색했고, 2002년 웨튼 앤 다운스라는 이름으로 첫 앨범을 발표했다. 지난 해에는 영국 순회 공연도 가졌다. 웨튼 앤 다운스는 지금 해오던 걸 다 접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음악, 보다 규모가 작고 우아한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명성 자자한 프로그레시브의 주역들이 합체 후 뜬금없이 팝에 탐닉했던 것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지속되는 음악적 유목의 여정을 보여준다.

DVD로도 제작된 < ICON - Acoustic TV Broadcast >는 제목 그대로 2005년 7월 27일 영국 BBC에서 방영된 언플러그드 공연 실황을 담았다. 'Heat of the moment' 'Only time will tell' 'Don't cry' 등 아시아 시절의 주옥 같은 히트곡, 그리고 웨튼 앤 다운스를 결성한 후 발표한 'Let me go' 'In the end' 등 열두 곡이 수록되어 있다.

다운스가 연주하는 피아노와 웨튼의 어쿠스틱 기타 선율이 주를 이루며, 첼로를 들고 ELO의 휴 맥도웰이 가세해 노장들의 익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원곡에 대한 클래시컬한 접근이다. 플러그가 해제되어 있는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연주는 원곡의 파워와 에너지를 잠재우고, 선율의 아름다움을 부각하고 있다. 수많은 실험과 변주 속에서 서정적인 멜로디로 유독 빛나는,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를 몰아서 듣는 느낌이다. 새로 나온 정규 앨범을 듣는 듯 연주와 노래, 레코딩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는 것도 특징. 전혀 라이브 앨범 같지 않다. 힘과 여유와 이력이 동시 공재하는, 중력과 향기가 느껴지는 어쿠스틱 앨범이다.

웨튼 앤 다운스는 아시아의 재결합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도원결의의 순간을 예고하는 듯, 언제든지 뭉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확신할 수는 없는 약속이지만, 전성기 시절의 노래를 아름답게 재구성한 < ICON - Acoustic TV Broadcast >만으로 슈퍼밴드의 전설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시아는 지금 없어도 아시아의 음악은 숨 쉬고 있다.

-수록곡-
1. Heat Of The Moment
2. Voice Of America
3. Let Me Go
4. God Walks With Us
5. Sole Survivor
6. Meet Me At Midnight
7. The Smile Has Left Your Eyes
8. I Lay Down
9. Open Your Eyes
10. Only Time Will Tell
11. Don'T Cry
12. In The End
13. There In Your 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