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 흑백 혼성의 독특한(튀는) 하모니가 인상적이던 힙합 크루 블랙 아이드 피스(The Black Eyed Peas)의 등장은 '힙합과 댄스의 결합'이라면 흔히 MC 해머나 바닐라 아이스를 떠올리는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을 뒤바꾸었다. 걸 그룹 와일드 오키드의 깜찍이 퍼기(Fergie)를 일당으로 끌어들인 것에서 블랙 아이드 피스는 확실히 여타 힙합 군단과 달랐다. 남성성이 강조된 힙합 세계에서, 또한 춤과는 거리가 먼 그 바닥에서 자칭 '댄서'라고 자부하는 금발의 퍼기를 데리고 온 것부터 차별화 전략은 발군이었다. 그것은 힙합에 수절하는 이들을 향한 배신이 아니었다. 꼴사나운 메시지가 지긋지긋해지고 개차반 랩 가수들의 득세에 환멸을 느낀 다수(미국사회)가 원한 새 천년 주류 힙합 영웅의 롤 모델이었다.
신나고 즐겁고 유쾌했던 슈퍼 싱글 'Where is the love'를 상기하는 이들은 잘 알 것이다. 조국을 향해 9.11 테러의 상흔을 노래한 그 곡이 왜 그토록 수백만 미국인에게 환영받았고, 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왜 영국(차트 1위)을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애국가가 됐는지 그 놀랄만한 성과를 기억하고 있다. 물론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감초 역할이 공헌한 바 없는 건 아니지만, 이는 정체되지 않고 좀더 하이브리드 힙합을 원하던 당시 대중의 입맛을 교묘하게 간파한 전술의 승리였다.
그 주역이 퍼기에 버금가는 패션 리더들 아니던가. 엉뚱하면서도 재기 발랄한 세 명의 MC 윌리엄(will.i.am)과 애플딥(apl.de.ap), 그리고 타부(Taboo)는 자신의 이름을 괴이한 기호로 쓰는 장난꾸러기다. 블랙 아이드 피스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가 바로 거기에 있다. 새 앨범
흑인 음악계 큰형님 제임스 브라운이 “요즘 보기 드문 귀여운 후배”라며 흔쾌히 게스트를 수락한 펑키 넘버 'They don't want music', 스팅을 초빙한 'Englishman in New York'의 리메이크 버전 'Union' 등 거장들과 협연한 것은 그들의 위상이 업그레이드됐다는 스타덤의 또 다른 함축이자 발상의 전환이다. 블랙 아이드 피스의 비논리적 개성이 강조된 'Like that', 'Dum diddly' 등 변칙적인 힙합 기교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내용물 전반에 걸쳐 'Where is the love'와 'Let's get it started'를 부른 호소(虎嘯)는 멜로디 펀치가 이전보다 약하다. 즉 전작의 퀄리티를 기대했던 이들에겐 실망이 클 것으로 보여진다.
네 번째가 되는 그들의 원숭이 사업이 그다지 매력포인트를 찾지 못하는 건 16곡이 흐르는 70분 간 명쾌한 훅 하나 없는 결과물을 축적한 까닭이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한번 더 가세한 'My style'의 곡조는 대중적 융화와는 거리가 멀고, 성감대를 자극할만큼 파격인 'My humps'에서 퍼기의 노골적인 섹스 어필은 쓸데없는 소모에 불과하다. 게다가 댄스 팝 궤적을 밟는 'Don't lie'와 'Gone going'은 <Elephunk>의 답습이라는 측면에서 지루하리 만치 따분하다. 누가 뭐래도 블랙 아이드 피스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Where is the love'가 왠지 아쉬운 것이 음반의 가장 큰 약점이다.
-수록곡-
1. Pump it
2. Don't phunk with my heart
3. My style Feat. Justin Timberlake
4. Don't lie
5. My humps
6. Like that Feat. Q-Tip, Talib Kweli, Cee-Lo & John Legend
7. Dum diddly Feat. Dante Santiago
8. Feel it
9. Gone going
10. They don't want music Feat. James Brown
11. Disco club
12. Bebot
13. Ba bump
14. Audio delite at low fidelity
15. Union Feat. Sting
16. Do what you w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