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핏줄에 뿌리를 대고 있는 갱스타 힙합 트리오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이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95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이 이들의 'Insane in the brain'과 'We ain't goin' out like that'을 표절했다는 시비가 일고부터였다.

이 사건으로 결성된 지 7년 만에 사이프러스 힐의 수입 음반은 그 반사작용으로 국내에서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우리 나라의 문화 키워드에 '갱스터 랩'과 '하드코어 랩'을 인지시키고 보편화시키는데 본의 아니게 공헌했다.

1988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팀웍을 짠 사이프러스 힐은 1991년에 발표한 데뷔앨범 <Cypress Hill>과 1993년에 공개한 <Black Sunday>로 흑인이 주도하던 1990년대 힙합의 일방통행을 거부하며 다양한 민족에 의한 폭넓은 문화의 공존을 시범했으며 이것은 거대한 성공을 창출했다. 물론 힙합 원론주의자들은 사이프러스 힐의 존재를 가볍게 보았으며 이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 했지만 작은 지류가 큰 강물로 합쳐지듯 사이프러스 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거대한 인기와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상쇄되었다.

2004년도 신보 <Till Death Do Us Part>는 '남미 3인조 갱단'의 통산 일곱 번째 정규앨범으로 전작을 발표한 지 3년 만에 탄생한 음반이다. 사실 2집 <Black Sunday> 이후 내놓은 4장의 앨범은 고품질(high quality)이었음에도 음반 전체에 중심을 둔 컨셉 형식으로 싱글로 커트 할만한 트랙이 여유롭지 못해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Till Death Do Us Part>는 예전처럼 힙합과 라틴 정서를 융합한 차별화 전략을 그대로 보존하는 한편('Latin thugs', 'Ganja bus') 'What's your number?'에서는 스카 펑크 밴드 랜시드(Rancid)의 리더 팀 암스트롱(Tim Armstrong)과 함께 '스카+힙합+펑크'라는 신천지를 개척한다.

또한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의 아담 호로비츠(Adam Horovitz)와 런 디엠시(Run DMC)의 두 멤버 조셉 시몬스(Joseph Simmons)와 대릴 맥다니엘스(Darryl McDaniels), 그리고 1980년대 힙합 왕국 '데프 잼 레코드'를 건설한 릭 루빈(Rick Rubin)이 작곡에 가세한 'Busted in the hood'도 앨범에서 빛을 발한다.

그러나 사이프러스 힐의 필살기는 비장한 분위기 속에 예측하기 힘든 비트와 리듬을 창조해 무겁고 어두운 미학을 구현한 'Another body drops', 'Money', 'Street wars' 같은 트랙들과 마리화나의 몽롱함을 음악으로 표현한 잿빛 느낌의 'One last cigarette', 'Never know' 등에서 호흡한다.

분명 <Till Death Do Us Part>도 수작이지만 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의 파급력에는 미치지 못한 듯 하다. 사이프러스 힐은 이 앨범으로 자신들의 현재 위치를 타진하고 다음에 행동할 관성의 방향을 가늠하는데 그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수록곡-
1. Another body drops
2. Till death comes
3. Latin thugs
4. Ganja bus
5. Busted in the hood
6. Money
7. Never know
8. Last laugh
9. Bong hit
10. What's your number?
11. Once again
12. Number seven
13. One last cigarette
14. Street wars
15. Till death do us part
16. Eu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