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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대중음악사의 거인들
      • DATE : 2000/04   |   HIT : 14588
      • by 임진모
      • 복잡한 역사를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역사를 꿰뚫은 위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이다. 대중음악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연대기나 음반보다는 주요 아티스트를 분석하는 것이 훨씬 정리가 빠르다. 우리 가요도 100년의 역사를 축적하면서 무수한 별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트로트가 정착된 1970년대 이후에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 셋을 꼽는다면 신중현 조용필 그리고 서태지가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 세 명이 그토록 자주 언급되는 것일까. 이번 호에서는 가요를 수놓은 세 거인이 남긴 업적을 살피면서 동시에 우리 대중음악사의 맥을 관통해보기로 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 사이를 장식한 신중현은 흔히 '한국 록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일렉트릭 기타나 드럼으로 울려대는 연주가 전무했던 척박한 토양에 록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다. 그는 60년대에 국내 최초의 록 밴드로 기록되는 '애드 포'를 결성해 록 사운드의 창달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많은 가수들의 노래를 작곡하고 편곡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당대를 주름잡았던 펄 시스터즈의 <님아>(1968년) <커피 한잔>(1968년), 박인수의 <봄비>(1970년),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69년) <님은 먼 곳에>(1969년), 장현의 <마른 잎>(1972년) <미련>(1975년) 등이 모두 그가 쓴 곡들이었다. <꽃잎>(1971년)의 이정화, <봄>(1973년)의 김정미를 포함해 이들은 '신중현사단'을 형성했다. 이들의 앨범에는 가수 이름 옆에 꼭 '신중현 작·편곡집'이란 말이 붙었으며 또 그래야 히트했다.

        이처럼 남에게 곡을 주다가 드디어 그는 밴드 '엽전들'과 함께 1974년 우리 가요사에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있는 <미인>을 발표해 가수로서도 이름을 곧추세운다. 이 곡은 서구의 록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그의 자세를 응축하고 있다. 명백한 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곡은 '라-솔-미-레- 도'의 5음계 전주로 되어있고 일렉트릭 기타는 거의 가야금 풍으로 들린다. 한마디로 양악(洋樂)이 아닌 국악화된 록이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비틀스나 지미 헨드릭스의 록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록을 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서구의 스타일에 맹종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여 우리 것으로 전화(轉化)하고자 했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 록'의 출현은 한참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비단 록만을 이 땅에 이식한 것은 아니다.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나 박인수의 <봄비>가 증명하듯 60년대 흑인음악인 소울(soul)을 창조적으로 수용했다. 일찍부터 흑인의 소리를 우리의 소리로 바꾸는 작업을 실천했던 셈이다.

        중요한 것은 록과 소울의 출현이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느냐는 점이다. 록과 소울이 우리에게 소개되기 전 국내에는 트로트(이미자)나 스탠더드 스윙(최희준)음악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음악들은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전세대가 공유하는 것이었던 반면 록과 소울은 청춘들만의 소리였다. 신중현에 의해 대중음악의 주체라는 청년세대는 기존의 음악에서 분리되어 나와 별도의 음악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음악팬들은 <미인> 이후 유신정권이 '대마초 왕초'로 지목하며 그를 퇴장시켜버린 것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1980년 <아름다운 강산>으로 잠깐 돌아왔지만 신중현은 결코 업적에 상당하는 대중의 환호를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대마초 사슬에 걸린 조용필은 신중현과 달랐다. 그는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덤에 오르자마자 들이닥친 대마초파동으로 활동이 정지되었으나 3년에 걸친 혹독한 수련기를 거치며 1980년 <창 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로 화려히 컴백했다.

        10대가 대중음악의 주요 소비층으로 등장하던 당시 그는 이른바 국내 최초의 '오빠부대'를 이끈 주인공이었으며 틴에이저 뿐 아니라 전세대가 음악에 참여하게 만든 진정한 '국민가수'였다. 그는 노년에서 소년에 이르는 폭넓은 음악소비자들을 끌어들이며 대중가요의 시장규모를 크게 확대했다.

        그가 이러한 세대통합을 이루게 된 밑받침은 '장르통합'이었다. 그는 당시에 존재하던 록, 트로트, 스탠더드 등 갖가지 음악들을 조용필이란 그릇에 담아내 새롭게 또 한국적으로 빚어냈다. 조용필은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가능한 모든 장르의 음악을 집대성한 단 한 명의 음악가'로 기록된다. 한마디로 그는 너무도 음악을 잘했다. <고추잠자리>(1981년) <못 찾겠다 꾀꼬리> <자존심>(1982년)은 지금 들어도 세련미가 넘친다. 언론이 붙여준 그의 별칭은 가왕(歌王)이다.

        녹음과 음향수준도 놀랄 만큼의 성장을 이룩했다. 사람들은 리듬과 멜로디, 보컬은 물론 당대 최고의 연주자로 구성된 그의 그룹 '위대한 탄생'이 선사한 사운드에도 넋을 잃었다. 팬들은 조용필 이후 굳이 팝송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남긴 위대한 공헌은 뭐니뭐니해도 이처럼 서구 팝에 일방적으로 몰려있었던 시장의 주도권을 가요로 역전시켰다는데 있다. 만약 훗날 가요의 세계화가 이뤄진다면 그 모든 토대가 조용필에 의해 구축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용필은 전성기가 지난 현재도 지속적인 공연을 통해 중장년 층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1998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에 몰려든 어른 관객들을 보고 <조선일보>는 "고급문화에 대한 무지와 대중문화 무시가 빚어낸 중산층 문화의 정체성 상실에서 벗어난 건강한 중산층 문화의 발아(發芽)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서태지는 세대통합적인 조용필과 달리 도리어 세대의 분리를 단행하며 90년대를 후끈 달구었다. 그는 세대 전체가 아닌 특정세대의 등장과 함께 떠올랐다. 바로 X세대였다. 그의 음악과 행위에는 기성세대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공격성과 저항이 깔려있었다. 그래서 그의 한 공연장에는 '대중음악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쓴 피켓이 걸리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세대와 대중음악의 역동적 함수관계를 밝히면서 음악이 단지 음악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현상'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1992년 데뷔에서 1996년 은퇴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게 충격이었다. 그만큼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논쟁의 지평을 제공한 아티스트는 없었다. 신중현도, 조용필도 그렇진 못했다.

        대중음악에 대한 담론도 본격화되었다. 음악팬들은 어느 자리에서나 떳떳하게 서태지를 비롯한 대중가수를 입에 올렸으며 언론과 학계에서도 서태지가 갖는 의미를 열심히 논의하고 분석했다. 이제 100만장 앨범 판매고가 뉴스거리도 되질 못할 정도로 대중문화는 서태지를 계기로 사회적으로, 산업적으로 폭발했다. '대항(對抗)문화'의 보루로 일컬어지던 대학마저 '대중문화'에 잠식되었다.

        서태지의 음악적 공헌은 먼저 국내에선 대중화가 어렵다던 랩을 '한국화'한 데 있었다. 랩은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 흑인의 거리음악. 그러나 그는 <난 알아요>(1992년)에 친근한 선율을, <하여가>(1993년)에는 농악의 유일한 선율악기인 태평소를 깔면서 흑인음악을 한국적으로 해석하는 비범한 재능을 과시했다. 갑자기 가요는 그로 인해 랩과 리듬 앤 블루스, 레게 등 과거에는 천대받던 흑인음악 판으로 돌변했다. 트로트, 포크, 민족음악은 일거에 몰락했다.

        랩은 나중 힙합으로 발전하면서 우리 음악계의 중추 스타일로 굳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니까 현재 H.O.T.와 젝키 등 힙합 스타들은 모두 서태지에게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청소년들은 지껄이는 랩이 중심이 된 힙합 음악으로 마음껏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서태지는 정말 모든 신세대들을 '작사가'로 만들었다.

        그의 기여는 한두 가지가 아닐 테지만 '하위(下位)문화'의 전면 부상을 주도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고교를 중퇴한 그의 학력은 교실의 열등생과 경제적으로 중산층 아래의 부모를 가진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서태지의 음악은 대표적 '하층민' 젊은이의 소리인 록과 랩이었다.

        그는 최고 스타였지만 록과 랩이라는 하위문화를 퍼뜨린 존재라는 점에서 국내 음악사의 각별한 존재로 평가된다. 그는 이를 통해 기존 음악 나아가 기성 가치를 위협했다. '비주류의 사고를 통한 주류 질서의 전복(顚覆)'이었다. 그는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정리하면 신중현은 록의 씨앗을 뿌리며 청춘의 소리를 드높였으며 조용필은 가요의 예술성을 완성하며 세대를 통합했다. 거기에 서태지는 하위문화의 파괴력으로 대중음악을 사회적 현상으로 끌어올렸다.

        아티스트의 자세, 예술성, 세대성, 사회성 등 대중음악의 모든 기본요소들이 이 세 사람에 의해 국내에도 확립되었다. 이들은 또한 서구음악이 어떻게 창조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를 웅변하는 존재들이었다. 신중현 조용필 서태지라는 산을 넘지 않고 국내 대중음악 속으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다.
      • 2000/04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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