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피곤하면서도 약간은 흥분된 표정이었다. 현 소속사(드림뮤직)와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새 길을 모색할 수 있는 '변화기'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현 회사에 잔류할 가능성도 있지만 어떤 방향을 택하든 그의 말대로 '전과 다른 환경'이 될 것은 분명해졌다.
우선 몸값이 달라졌다. 정확한 액수를 밝히진 않았지만 소문에 따르면 계약금 20억원을 호가한다. 2000년 여름 발악(發樂)이란 한 사이버가요제를 통해 데뷔한 평범한 대학생가수에서 2년만에 일약 가요계 최고의 스타로 비상한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꺼낸 인터뷰 첫마디는 “양복을 입고 방송프로 이곳저곳에 나오는 착한 발라드 가수는 이제 그만!”이란 말이었다.
현재 어떤 구상을 하고있나? 소속사는 바뀌는 건가?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해지면 바로 새 앨범을 서둘러야 할 입장이다. 그 전까지는 좀 쉬고싶고 공부와 운동을 열심히 할 계획이다. 현재 권투를 열심히 하고 있다.
계약을 새로 하게 되면 어떤 방향을 취할 생각인가?
우선은 음악 공부, 학교 공부가 먼저다. 하지만 잔류든 새 길이든 가수로선 꽤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나만의 표현세계'를 가진 가수, 한마디로 '섹시한' 가수가 되고싶다.
섹시한 가수? 그게 뭔 말인가?
2집 <멜로디 다무르>(Melodie D'Amour)는 프로듀서가 없었다. 종합선물세트였다고 할까? 그간 가수로서 '진짜 후진 것도 없고 그렇다고 좋을 것도 없는' 무난한 이미지이지 않았나. 좀 싱거웠다고 본다. 이제 그런 게 싫다. 섹시란 말은 그저 그런 착한 인물이 아니라 약간은 삐딱성을 타는 가수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난 그간 너무 온순하게 음악하고 시키는 대로 활동해왔다.
학교문제가 걸리지 않는가? 가수로서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그러다간 행여 UN의 김정훈처럼 될 수도 있지 않나?
솔직히 수업을 받기가 너무 힘들다. 하지만 괜찮다. 올해 (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으로 좀 많은 19학점을 신청했다. 벅차긴 하지만 '빡세게' 하면 내년에 졸업 가능하다. 정말 열심히 할 것이다. 술도 끊을 생각이다(그는 소주 서너 병의 주량이다).
군 문제는 어떻게 되나?
바로 입대해야 할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가수활동이 대학 다니면서 장난하듯 하고 그만둘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군 입대를 좀더 연기하기 위해 대학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과 대학원은 어렵고 일반대학원을 생각중이다. 그렇게 되면 가수로서 3년을 더 확보하게 된다. 그 때문에도 이번 쉬는 시간이 내겐 너무나 중요하다.
성시경은 발악가요제의 입상 곡 '내게 오는 길'을 비롯해 이듬해 4월에 내놓은 첫 앨범을 통해 '처음처럼' '미소천사' '내 안의 그녀'를 연속 히트시키면서 그해 연말 7개 방송과 언론사 주최의 가요제에서 일제히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7월에 내놓은 2집 역시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넌 감동이었어'로 호응을 얻으면서 가볍게 2집 징크스를 넘어섰다.
그러나 애초 라디오전파를 타면서 대중에게 호소한 것과 달리 인기전선에 진입한 이후로 그는 과다노출이라고 할만큼 너무도 많이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그의 인기를 높인 동력이기도 했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텔레비전 프로 이곳저곳에 나오는 '엔터테이너'의 양상은 일각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그는 '가수면서 가수가 아닌 것을 하는' 근래 왜곡된 가수의 전형이자 대표일지도 모른다.
왜 욕먹을 정도로 그리 TV에 많이 나오나?

가수는 누구나 신비감을 주고싶어하지만 우리 방송현실은 그렇지 않다. 느끼하다고 해서 내가 얻은 별명이 '버터왕자'다. 하지만 결코 느끼하지 않은데 방송프로에 나가서 그렇게 비쳐진 것이다. 권투하고, 술 많이 먹고, 더러는 싸가지 없는 버터왕자가 있는가? 허나 이제는 그렇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 걱정 말아달라.
앞으로는 텔레비전 출연을 끊는다는 말인가?
이제는 방송에서 공연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방송을 안 할 수는 없다. 난 아티스트가 아니라, 대중가수라고 생각한다. 대중가수란 것을 놓칠 수는 없다.
가요와 방송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방송현실도 점점 바뀌고 있다. 가요순위프로도 인기가 떨어지는 것으로 안다. 가수도 앞으로는 방송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솔직히 외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방송이 가요를 쥐고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요에 관해 TV는 과도기에 처해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 현실에서 가수로서 그가 가지고있는 외적 조건은 유리하다. 소프트한 외모, 186㎝의 훤칠한 키에 고려대 학생이란 점이 그를 여학생의 선호 타겟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여대생들한테 인기가 높다. 말도 많았던 1969년 클리프 리처드 공연이래 33년 만인 지난해 9월, 우리 대중가수로서는 처음 이화여대 강당에서 공연을 한 것도 그가 얼마나 여대생 팬이 두터운가를 입증한다.
조건 덕을 본다고 생각하지 않나. 언젠가 여고생을 만났더니 “성시경 앨범을 산다고 하면 딴 가수 앨범과 달리 부모가 선뜻 돈을 준다”고 하더라. 자식이 가수 판 산다고 돈 달라고 할 때 부모가 마구 돈을 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나도 나의 조건이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생각하나? 고음에서 답답한 점이 걸리지 않는가?
가수는 음색이 중요하다. 호흡, 발성, 그리고 갖가지 테크닉보다 목소리 색깔이 먼저라고 본다. 나의 색깔은 중저음에 있다. 그 영역에서 예쁜 소리가 나온다. 거기서 벗어날 생각도 없다. 고음의 패턴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가수로서 미래의 플랜을 공개한다면?
난 원래 긴 계획은 못 잡는 성격이다. 그래서 3집 얘기만 한다. 올 겨울이나 내년 초에 나올 새 음반에 내 색깔을 넣는다는 말 외에 그 이후의 장기플랜은 없다. 그저 3집에 조금씩 조금씩 내 색깔을 집어넣으려고 한다. 변화는 전면적인 것보다는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신보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보이스 톤과 멜로디는 기존의 내 것으로 하고, 편곡은 트렌디하게 할 생각이다. 그리고 R&B를 많이 하고싶다. 3집의 프로듀서를 누구로 할지도 이미 맘속에 있다. 가수의 태도 측면은 아까 말했듯 섹시하게 나갈 거고….
그는 인터뷰 말미에도 '좀더 설득력 있는 변화를 위해서도 쉬는 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앞으로는 생각 없는 일은 하고싶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내내 다른 데 눈을 팔지 않고 똑바로 상대를 응시하며 얘기했다. 경험이 많아진 탓인지 말투는 프로였고 더러 거친 언어를 구사할 만큼 자신감에 넘쳤다. 허나 그렇다고 예의를 잃지 않았다.
그를 알아본 팬들이 마구 들이닥쳐 사인공세를 펴는 통에 좁은 커피숍은 갑자기 북적거렸지만, 그는 일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팬들은 나의 단면만 본다. 오해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 불만은 없다. 팬들은 늘 고맙다. 그리고 난 노래하는 게 좋다. 팬들에게 '노래하는 가수'임을 확실히 심어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가겠다. 진심이다. 애정으로 지켜봐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