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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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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톨라(Cartola)
데뷔/결성 : 1928년
활동시기 : 1920-1970년대
솔로
- DATE : 2005/12 | HIT : 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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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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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모자를 쓴 영원한 삼바의 연인, 카르톨라”
녹음 상태도 그렇고 조금 투박하다. 그렇다고 카르톨라(Cartola)의 레코딩이 매력적이지 않은 건 아니다. 전체가 거의 하나의 덩어리로 들리는 사운드는 5.1채널 시대와 태연하게 무관하다. 브라질 최고의 삼바 작곡가의 음악은 동글동글 굴러나와 귀를 춤추게 한다. 왕가위의 브라질 영화가 나온다면 카르톨라의 곡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삼바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삼바 카니발이 브라질 정부의 지원으로 경연대회 형식으로 치러진 제 1회 대회(1929년 1월 20일)부터 양대 에스콜라(Escola. 삼바학교)의 하나였던 망게이라의 작곡가이자 악장으로 활동했다.
매년 6월이 되면 브라질의 삼바스쿨, 즉 에스콜라(Escola)는 그들의 여름이자 우리의 겨울인 1월에 벌어질 삼바 카니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다. 카니발은 원래 포르투갈인들의 축제인데, 그들이 브라질에 식민제국을 건설하면서 함께 넘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브라질 카니발에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가무 문화의 영향이 더 크게 남아 있다. 삼바가 없으면 브라질 카니발이 아닌 것이다.
카르톨라는 무수한 삼바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삼바 지 모루(Samba de Morro)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망게이라에서 작곡했다. 삼바 지 모루는 당시 브라질 라디오를 통해 급속도로 인기를 얻고 있던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삼바 칸사웅(Samba Cancao) 스타일과 달리 카니발의 현장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그럼 삼바 지 모루는 요란한 축제 음악?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삼바 지 모루의 진정한 의미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삼바 칸사웅을 거부하고 전통 삼바의 흐름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데에 있다.
카르톨라의 레코딩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생전에 남긴 것이 넉장). 1937년의 정부 주최 작곡 경연에서 대상을 수상한 ‘Sei Chorar’ 같은 곡도 30년이 훨씬 지나 레코딩 되었을 정도다. ‘Sei Chorar’, 그리고 영화 < City Of God >과 < 중앙역 >의 ‘Preciso Me Encontrar’, 우리말로 ‘나를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카르톨라의 첫 번째 음반인 < Discos Marcus Pereira >에 담겼던 곡이다. 1974년, 그의 나이 65세였다.
레코딩 기술과 무관한 시대를 살았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까? 장기간 군부독재가 지속된 브라질에서 생활했던 것이 이유가 될 것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며 음반을 발표하고 호평받은 해외파 브라질 뮤지션들과 국내에 남은 그의 ’처지’는 달랐다.
물론 망명을 택하지 않은 건 그의 ’입장’이다. 그는 아내인 지카와 함께 지카르톨라(Zicartola)라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곳에는 삼바와 보사노바 뮤지션들이 모였고 서민과 가까운 음악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음악과 사람을 사랑한 소박한 사람으로 변함 없이 가난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갔다. 본명(Angenor de Oliveira)보다 벽돌공으로 일하던 젊은 시절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다고 해서 붙은 별명 카르톨라(cartola)가 여전히 잘 어울리는 모습 그대로.
조용범(blog.naver.com/slow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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