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페티의 음악은 지극히 미국적이다. 로큰롤, 블루스, 포크, 컨트리를 중심으로 뉴웨이브, 펑크 등의 스타일을 자신만의 형식에 용해시켜 여러 가지 음악 실험을 추구했다. 가장 미국적인 음악으로 대중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면서 하나의 유형에 안주하지 않고 여러 음악적 패러다임을 실험한 톰 페티는 평단 측으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톰 페티가 미국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가치다.
1950년 미국 남부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금발의 톰 페티는 1970년대 중반 정식으로 음악계에 명함을 내밀고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닐 영(Neil Young)과 백밴드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의 관계처럼 톰 페티도 솔로 활동과 하트브레이커스(Heartbreakers)와의 그룹 활동을 병행했다.
1977년의 데뷔 앨범
유리드믹스(Eurythmics)의 데이브 스튜어트(Dave Stewart)가 프로듀싱 한
뻐드렁이의 톰 페티는 1989년에 공개한
그의 명성은 1990년대 중반까지 승승장구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톰 페티의 입지는 약해졌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굳건하다. 주위에 한눈을 팔지 않고 외길을 선택했다. 톰 페티가 동료나 후배들에게 인정받는 것에는 그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