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빌리 조 암스트롱(Billy Joe Armstrong), 마이크 던트(Mike Dirnt), 알 소브랜트(Al Sobrante)의 라인업으로 활동의 시작점을 찍은 이들의 전신(前身)은 스위트 칠드런(Sweet Chidren)이었다. 하지만 유사한 이름을 가진 밴드가 있다는 이유로 2주만에 그린 데이로 환승하게 되었다.
새롭게 출발한 밴드는 1991년에 데뷔작인 < 1039/Smoothed Out Slappy Hours >를 발표했다. 단 하루만에 녹음된 이 앨범은 괴짜다운 이들의 특성을 잘 드러내며 인지도를 넓혀주었다. 이 후 알 소브랜트가 대학을 가기 위해 밴드를 떠났고 대신 트레 쿨(Tre Cool)이 드럼 스틱을 거머쥐었다.
1년 뒤 등장한 < Kerplunk >는 그린 데이에게 언더그라운드를 뛰쳐나올 계기를 마련해준 역작이었다. 노이즈와 캐치(catchy)한 멜로디가 절묘하게 만난 이 앨범을 듣고 많은 메이저 음반사들이 구애의 손길을 뻗친 것은 당연지사. 밴드는 드디어 세상 밖으로의 화려한 외출을 준비했다.
< 워너(Warner) >와 계약한 뒤 1994년에 발매한 < Dookie >는 미국 내에서 1000만장 이상, 전 세계적으로 20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몬스터 히트를 기록하며 뉴 펑크(New Punk)를 X-세대 음악의 위치로 끌어올린 주역이었다. 첫 싱글 ’Longview’는 MTV에서 꾸준히 리퀘스트되었고 스매시 히트송인 ’Basket case’는 빌보드 모던 록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그린 데이의 대표곡이 되었다.
그 해 여름에 밴드는 25년 만에 다시 개최된 우드스탁(Woodstock) 페스티벌에 참가, 화끈한 퍼포먼스를 연출해냈고 이에 힘입어 네 번째 싱글 ’When I come around’ 역시 차트 넘버원에 안착하며 인기 몰이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미(Grammy Awards)는 이들에게 최우수 얼터너티브 음악 연주상을 선사하며 현재의 대세가 펑크 록임을 보증하였다.
그러나 1995년에 나온 < Isomniac >은 전작의 패턴을 유지하며 4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대박이 터진 뒤의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파괴력을 지닌 싱글감이 없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하여 < Dookie >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양산해낸 것이다. 하지만
이후 그린 데이는 펑크 록 사운드를 핵으로 다양한 접근법을 선보인 < Nimrod >(1997), 원숙한 노련미를 맘껏 펼쳐 보인 < Warning >(2001)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펑크 록 사운드가 녹슬지 않았음을 훌륭히 증명했다. 그리고 같은 해 그린 데이는 자신들의 히트곡을 총 정리한 < International Superhits >(2001)로 숨을 고르며 재충전에 들어갔다.